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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열차'부터 '사냥'까지 데뷔 60주년 맞은 안성기 "국민배우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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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데뷔 60주년을 맞아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한 배우 안성기.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13일 데뷔 60주년을 맞아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한 배우 안성기.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미 넘치는 연기로 60년간 평범한 우리 이웃, 한국의 보통 사람을 연기해온 배우 안성기(65)의 얘기다. 그의 데뷔 60주년을 맞아 한국영상자료원이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을 마련했다. 13일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개막식에 참석한 그는 “60년은 정말 실감이 안 나는 숫자”라며 “사실 나를 50대 중반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이 행사를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1957년 아역으로 데뷔해 130편 출연 #청춘부터 악역까지 폭넓은 연기 자랑 #28일까지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서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 열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에서 아역으로 데뷔한 안성기는 지난 60년간 약 130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신문광고에 “천재 소년 안성기”라는 문구가 등장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그는 “당시에는 전쟁 후라 아역배우가 없었다”며 “연기가 뭔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선전용 문구 ‘천재 소년’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겸손함을 보였다.

1980년 정지영 감독이 만든 전쟁영화 '남부군'에 출연한 최진실과 안성기. [중앙포토]

1980년 정지영 감독이 만든 전쟁영화 '남부군'에 출연한 최진실과 안성기. [중앙포토]

하지만 필모그래피가 쌓일수록 안성기는 점차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갔다. TV 드라마 1회 출연을 제외하곤 영화 외길을 걸어온 그는 ‘하녀’(1960), ‘남부군’(1990) 등 굵직굵직한 작품을 통해 다양한 얼굴을 선보였다. “가장 중요한 작품을 뽑아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그는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인데 한 작품만 고르라면 고문”이라면서도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 8편을 꼽았다.

가장 먼저 꼽힌 작품은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 그는 “당시 사회적으로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는 시대였고 정확하게 그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임권택 감독과 첫 만남인 ‘만다라’(1981), 대중적 인기를 안겨준 ‘고래사냥’(1984), 외대 베트남어과 출신으로 동명 소설의 영화화를 권한 ‘하얀 전쟁’(1992)을 꼽았다. 첫 악역에 도전한 ‘투캅스’(1993)과 주연에서 조연으로 연착륙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준 작품들과 천만 관객을 돌파한 ‘실미도’(2003) 등도 빠지지 않았다. 본인과 가장 닮은 캐릭터로는 톱스타 최곤 역을 맡은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라디오 스타’(2006)의 매니저 박민수 역을 꼽았다. 

그동안 선한 역할을 주로 맡아온 박중훈과 안성기가 망가지고 부패한 경찰을 연기하며 인기를 끈 영화 '투캅스'. [중앙포토]

그동안 선한 역할을 주로 맡아온 박중훈과 안성기가 망가지고 부패한 경찰을 연기하며 인기를 끈 영화 '투캅스'. [중앙포토]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안성기-박중훈이 함께한 영화 '라디오 스타'. [중앙포토]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안성기-박중훈이 함께한 영화 '라디오 스타'. [중앙포토]

스크린쿼터 등 사회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그는 “성인 연기자로 다시 시작한 1980년대는 영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며 “영화하는 사람도 좀 더 존중받고 동경의 대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품 선택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영화에 관련된 일이면 앞장서서 열심히 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ㆍ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ㆍ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직함’에 대해서도 “한국 영화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이를 지원하는 의미있는 일”이며 “나 자신에게도 큰 자극이 된다”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계획 역시 모두 영화로 수렴했다. “연기를 오래 하는 것, 젊은 후배들이 보다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배우 정년을 늘리는 것”을 꿈이라고 말하는, 가장 왕성하면서도 올곧게 활동해온 배우 앞에서 ‘팬’을 자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역시 “팬클럽이 없으니 모든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간 함께 일궈온 한국 영화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기뻐하면서도 “대기업이 투자하다 보니 나이드신 분들이 도태되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며 “지금 현장에 남은 선배들과 밑에서 올라오는 세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개막식 행사에는 후배 배우 오지호, 장동건 등이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이날 개막식 행사에는 후배 배우 오지호, 장동건 등이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자신의 연출작 18편 중 13편을 안성기와 함께 했다는 배창호 감독은 이날 축사를 통해 “하얀 도화지처럼 여러 가지 색깔을 입힐 수 있었기에 여러 작품을 할 수 있었다. 상복이 많아서 '안상복', 치밀하고 조용한 성격에 '독일 잠수함'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영화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오동진 영화평론가), “재능과 근성을 겸비한 연기자의 표본이자 롤모델”(윤성은 영화평론가) 등이 그에 대한 평가다. 신성일, 강수연, 송강호, 장동건, 한예리 등 원로부터 신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동료 배우들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번 행사는 오는 28일까지 계속되며 주요작 27편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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