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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여혐’ 비난에 "몰랐다"며 꼬리내리는 기업들

중앙일보

입력

“반려동물의 출입은 삼가세요.”

 “옆자리 사용을 배려해주세요.”


스타벅스코리아가 최근 페이스북ㆍ블로그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펼치고 있는 ‘매장 예절 캠페인’이다. 그런데 이 캠페인이 역풍을 맞고 있다. 광고 속 만화에 등장한 사람들의 성별 때문이다. 반려견을 매장 안에 끌고 오거나, 4인 테이블을 홀로 차지하고 있는 ‘진상 고객’들을 모두 여성으로 표현했다. 반면 ‘결제한 영수증은 꼭 챙기라’는 캠페인 속의 영수증을 손에 쥔 착한 손님은 남성으로 그리고 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내용의 이 광고에 소비자들은 “여성 고객을 비하하고 있다”며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스타벅스 캠페인, '여성 손님 비하했다' 항의 쏟아져 #기민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 "불매하겠다" 적극 항의 #"몰랐다"는 핑계 통하지 않아…세심한 주의 기울여야

해당 광고가 논란이 됐지만 스타벅스 측은 문제가 된 캠페인 사진을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게재하고 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이 ‘여혐’(여성혐오) 마케팅 논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여성을 비하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기업들은 대개 “몰랐다. 단순한 실수였다.”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애당초 광고를 기획·제작할 때 이런 구설에 오르지 않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 자체가 잘못이다.

소비자들은 광고 모델의 과거 발언까지 문제 삼기도 한다.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 코리아는 지난달 개그맨 유세윤씨를 홍보 모델로 기용했다가 하루 만에 영상을 삭제해야만 했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마블 아이언 피스트’를 홍보하는 광고 영상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넷플릭스 고객들은 광고 모델인 유씨가 2년 전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여성을 비하ㆍ혐오하는 발언을 해 문제가 됐던 점을 걸고넘어졌다.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자 넷플릭스는 “더욱 귀 기울이고 살펴보는 넷플릭스가 되겠다”며 해당 광고 영상을 내렸다.

화장품 브랜드 에뛰드하우스도 지난달 말 방송인 전현무씨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가 예고 영상을 3시간 만에 지웠다. 전씨가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도 여자로 태어나서 대접받고 싶다”는 등의 발언을 했던 점이 문제가 됐다. “여성을 비하했던 방송인을 모델로 기용하는 업체의 화장품을 살 이유가 없다”며 불매 운동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참신한 모델을 기용하려했던 화장품 업체의 마케팅 전략이 되려 역풍을 맞은 것이다.

논란에 휩싸인 기업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움직인다. 예전에는 ‘광고가 마음에 안 들면 안 보면 그만’이었다면 이제는 ‘잘못된 내용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곧장 행동에 옮긴다. 지난해 4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이 서울 청담동 매장에서 소개한 ‘한국여자’라는 작품이 문제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네티즌들은 디올 한국지사에서 논란에 대해 별반응이 없자 프랑스 파리 본사에 연락했다. “해당 작품이 마치 ‘한국 여성’을 ‘성을 팔아 명품 백을 사는 사람’으로 비하했다”며 영어와 프랑스어로 e메일을 보냈다. 디올 측은 뒤늦게 문제 작품을 철수했다.

글로벌 IT 기업 구글은 각종 캠페인과 광고 영상을 제작할 때 성비와 인종 다양성까지도 계산하고 고려한다. 구글은 매년 5월 미국에서 개최하는 I/O(개발자 회의)에서의 연사의 성 비율도 계산한다. 이 행사는 엔지니어·프로그래머 등 남성들의 참가 비중이 높다. 연사의 남녀 비율을 5대 5로 맞출 수는 없지만 최대한 여성 연사와 참석자들을 배려하겠다는 취지가 돋보인다. 

국내 기업들도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구글처럼 유난스러운 노력을 해야한다. 문제가 되고 논란이 커진 뒤에 “비하할 의도가 아니었다”는 해명을 내놓거나 광고를 내리는 것은 아마추어 같은 처사다.

하선영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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