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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분리, 수익모델, 보안 강화 ‘3단 뜀틀’ 넘어야 연착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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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호 11면

인터넷은행 초기 돌풍 이어질까

지난 3일 문을 연 첫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가 나흘 만에 계좌수 10만 개를 넘어서는 등 초반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 6일 기준 예·적금 등에 몰린 돈은 730억원, 체크카드 발급은 9만1130건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8021건(410억원)의 대출이 이뤄졌다. 특히 최고 연 2%의 금리를 제공하는 ‘코드K 정기예금’은 3일 만에 200억원 한도가 완판됐다. 영업점을 거치지 않고 모바일 기기와 자동입출금기(ATM) 등 전자매체를 통해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곳이 인터넷전문은행(이하 인터넷은행)이다. 2015년 6월 금융위원회가 정보통신기술(ICT)을 금융에 접목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도입했다. K뱅크 역시 모바일 앱을 사용해 10분 안에 계좌를 만들고 계좌번호를 몰라도 전화번호만 알면 문자로 송금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직장인 윤주하(29·경기도 고양시)씨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퇴근 이후에도 대출을 비롯해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인터넷은행 1호 K뱅크 출범 #문 연 지 나흘 새 10만 명 몰려 #은산분리 규제로 증자 어려워 #뒤늦은 개정안은 국회서 낮잠 #쇼핑몰과 연계한 일본 라쿠텐 #SNS로 금리 정하는 독일 피도르 #해외선 수익모델 발굴에 주력

은산분리 안 풀면 KT·카카오 2대주주

모바일로 10분 만에 통장을 개설했다. 염지현 기자

모바일로 10분 만에 통장을 개설했다. 염지현 기자

하지만 K뱅크 미래를 장밋빛으로 전망하기엔 이르다. 새 시장을 여는 K뱅크가 풀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상당수 금융전문가는 모호한 자본 확충 방안을 우려하고 있다. 현 은행법에선 산업자본(비금융 주력자)은 은행 지분을 10% 이상 가질 수 없는 ‘은산(銀産)분리’ 대상이다. 10% 미만을 갖더라도 의결권은 4%에 묶인다. 은산분리는 동양종금 사태처럼 금융업체가 대기업의 사금고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정책이다. 그럼에도 K뱅크는 KT가 주도적으로 ICT로 혁신을 이끈다는 목표로 GS리테일·우리은행·KG모빌리언스 등 20개 기업을 모아 출범했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K뱅크는 초기 자본금 2500억원 중 절반 이상을 시스템 구축과 서비스 개발로 사용했고 인건비 등 경비를 제외하면 약 370억원이 남는다”며 “앞으로 자기자본비율(BIS) 11~12%를 맞추기 위해선 3000억원 증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이 점차 바닥 나는 상황에서 최대주주 역할을 못하는 KT는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난 5일 은행업 본인가를 획득한 카카오뱅크도 마찬가지다. 올해 6월 문을 열 예정이지만 은산분리 규제로 카카오(지분 10%) 대신 한국투자금융지주(58%)가 최대주주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인터넷은행이 ‘4%(의결권)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긴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국회에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법안이 다섯 건이나 제출돼 있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조기 대선이 펼쳐지면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관련 법안은 강석진 자유한국당 의원과 김용태 바른정당 의원이 발의한 은행법개정안 2개와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 유의동 바른정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안 3개다. 여당 의원들의 법안은 인터넷은행에 한해 의결권 있는 지분 한도를 기존 4%에서 50%까지 올려주자는 게 골자다. 야당 의원들은 지분 한도를 34%까지만 완화하고 2019년까지 한시 적용, 5년 단위 재심사 등 조건부 조항을 더했다. 시민단체와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크다는 점도 변수다. 전성인(한국금융학회장)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기관도 인터넷은행을 할 수 있는데 법안을 바꾸면서까지 산업자본이 대주주로 나서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오히려 K뱅크가 구체적인 자본 조달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은행업 인가를 받은 게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대형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은 최근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정부가 은산분리 완화를 우선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시범인가 방식으로 인터넷은행을 도입하면서 법적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향후 은행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복잡한 주주 구성으로 효율적인 의사 결정이나 운영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은산분리 고수, 일본은 사후 통제

해외에서 인터넷은행 관련 은산분리 이슈는 10년 전에 교통정리가 끝난 얘기다. 은산분리 규제 방식은 각국의 산업화 과정이나 자본 시장 발달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다. 미국은 여전히 은산분리를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산업자본은 은행 주식을 25% 이상 취득할 수 없고, 25% 미만을 보유하고 있어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5%뿐이다. 대부분 증권사·보험사 등 비은행 금융그룹을 중심으로 인터넷은행을 설립했다. 이와 달리 일본은 2000년 8월 산업자본이 인터넷은행을 설립할 수 있도록 은행법을 개정했다. 대신 사후 통제장치를 강화했다. 자산의 리스크 관리를 비롯해 고객 개인정보 보호장치, 은행 경영의 독립성 확보 장치 등을 금융 당국이 관리·감독하는 방식이다. 유럽은 금융그룹의 계열사나 독자적인 사업 브랜드를 가진 사업부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수익모델 발굴도 인터넷은행의 중요한 과제다. 해외에서 인터넷은행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했다. 미국에선 1995년 세계 최초로 시큐리티퍼스트네트워크뱅크(SFNB)가 설립된 뒤 38개 인터넷은행이 등장했다. 2014년 기준 남아 있는 은행은 24개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라진 14개 인터넷은행을 분석한 결과 무리한 금리 경쟁으로 예금 규모를 단기간에 늘렸으나 과도한 조달비용 지출로 실적 부진에 빠졌다”고 말했다. 신설 인터넷은행이 고금리 전략에 주력하면 기존 은행들도 금리 경쟁으로 맞서기 때문에 신규 진입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K뱅크 역시 2%대 특판상품이 개점 효과를 이끌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백 연구원은 “K뱅크는 특판상품을 제외해도 정기예금 금리가 1.55% 수준으로 기존 은행에 비해 금리를 높게 책정해 초기 빠른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인터넷은행의 성공적인 수익모델은 뭘까.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격 경쟁 대신 기존 은행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찾는 게 더 유리할 것으로 봤다. 그는 “소비자 만족이나 편의성 중심의 영업모델을 추구하는 은행들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 영업을 시작한 일본 인터넷은행은 빠르게 성장하며 기존 은행을 추격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일본 6개 인터넷은행의 당기순이익은 평균 74억 엔으로 4년 전보다 722% 성장했다. 반면 일본 전국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평균 292억 엔으로 같은 기간 41% 증가하는 데 머물렀다.

이 중에서도 예금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온라인 쇼핑몰 1위 기업 라쿠텐이 만든 라쿠텐뱅크다. 전체 예금은 1조2470억 엔(약 13조원)이다. 이곳은 모(母)회사인 라쿠텐과 연계해 다양한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쇼핑몰 주요 고객인 젊은 층을 타깃으로 신용대출사업을 하는 한편 직불카드 포인트는 쇼핑몰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최근 5년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곳은 일본 2위 이동통신사인 KDDI와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은행이 손잡고 2008년 설립한 지분뱅크다. 이곳은 KDDI의 강점을 살려 모바일뱅킹에 특화했다. 외화예금을 거래하거나 휴대전화 번호로 송금하는 등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모바일로 처리할 수 있다.

지분뱅크, ‘ATM 록’으로 보안 강화

이 중에서도 은행 전문가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손꼽는 곳이 독일의 피도르방크다. 금융전문지 더뱅커가 꼽은 ‘2013년 주목해야 할 은행’에 선정되는 등 독일에서 가장 성공한 인터넷은행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병호 연구위원은 “서비스 제공자인 은행 중심의 영업에서 벗어나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경영 전략을 선보인 게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설립 초기부터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고객과 의견을 주고받는 커뮤니티를 강화했다. 상품을 개발할 때도 고객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좋은 아이디어에는 포상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특히 SNS를 활용해 예금 금리를 주는 독특한 서비스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피도르방크 페이스북 페이지에 2000명이 ‘좋아요’를 누를 때마다 예금 금리가 0.01%포인트씩 높아진다.

인터넷은행은 보안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금융회사 웹사이트에서 개인정보를 빼내는 피싱 등 각종 인터넷 금융사건이 급증하고 있어 인터넷은행 특성에 맞는 전산보안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대형 입법조사관은 “인터넷은행은 다양한 ICT업체가 참여하고 복수의 제휴회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보안에 더 신경 써야 한다”며 “특히 전산시스템을 외부에 위탁하는 경우엔 감독·관리 책임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연구위원은 “모바일뱅킹 서비스가 핵심인 지분뱅크는 다양한 보안 기능을 마련해뒀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 통신 기능을 정지해 은행 거래를 차단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평상시엔 잠가뒀다가 예금을 인출할 때만 잠금 기능을 해제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ATM 잠금 기능’도 제공한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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