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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125년 전 전통 방식대로 술 빚어 … 30년 이상 경력의 장인만 35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싱글몰트 위스키 ‘더발베니’ 생산 총괄 스튜어트

지난달 21일 서울 통의동 아름지기에서 데이비드 스튜어트(가운데) 가 바텐더들과 시향을 하고 있다. 아래 술이 ‘DCS 컴펜디엄 챕터2’다. [뉴시스]

지난달 21일 서울 통의동 아름지기에서 데이비드 스튜어트(가운데) 가 바텐더들과 시향을 하고 있다. 아래 술이 ‘DCS 컴펜디엄 챕터2’다. [뉴시스]

여러 증류소에서 만든 위스키 원액을 섞어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와는 달리 싱글몰트 위스키는 한 증류소의 원액만을 모아 빚는 위스키다. 이 때문에 흔히 싱글몰트 12년산은 블렌디드 위스키 15년산으로 치기도 한다.

보리 재배·건조·발효·증류·병입 등 #생산 전 과정 기계 대신 사람이 맡아 #두가지 오크통서 숙성해 오묘한 맛 #몰트마스터 되려고 10년간 훈련 #하루 30~40가지 원액 시음·시향

대표적 싱글몰트 위스키의 하나인 ‘더 발베니’(이하 발베니)는 보리를 재배하는 것에서 건조, 발효, 오크통 숙성, 병입 등 전 과정이 1892년 첫 생산 때부터 이어진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증류소에서 술을 만드는 사람이 100명, 이 중 30년 이상 경력의 장인만도 35명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지드래곤이, 해외에서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등이 유명인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발베니의 제작은 몰트마스터 데이비드 스튜어트(72)가 맡고 있다.

그는 1962년 윌리엄그랜트앤드선즈에 입사해 위스키를 만들어 왔다. 몰트마스터로는 74년 뽑혔다. 몰트마스터는 위스키의 향과 맛, 배합, 제조 과정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본래 윌리엄그랜트의 5대 몰트마스터로서 글렌피딕과 그란츠 등의 술까지 레시피를 총괄하다가 2009년부터는 후계자 격인 브라이언 킨스먼(6대 몰트마스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발베니 몰트마스터만 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스튜어트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났다.(괄호 안은 편집자 주)

53년간 위스키를 만들어 왔다.
“지금이야 53년 경력이 쌓였지만 입문은 우연찮게 하게 됐다. 고교 졸업 당시 고향인 영국 글래스고의 지역신문 ‘글래스고 해럴드’에 있는 구인광고를 보고는 재미있겠다 싶어 윌리엄그랜트에 재고 관리원으로 입사했다.”
몰트마스터는 어떻게 됐나.
“몰트마스터 이전에 위스키 연구자가 되는 것이 먼저다. ‘후계자’ 같은 개념이다. 윌리엄그랜트의 4대 몰트마스터인 해미시 로버트슨이 내게 몰트마스터 훈련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당시에는 위스키 회사들이 지금처럼 크지도 않았고, 수공업이 많아 내가 운 좋게 지명된 것 같다. 요즘의 몰트마스터들은 대부분 화학자 출신이 많다.”
몰트마스터가 되기 위해 어떤 훈련을 했나.
“64년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다행히 그때 갓 어른(19세)이 되기도 했다. 훈련은 하루에 30~40가지 원액을 시향하고 이를 분석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루에 30~40가지 원액을 시향한다. 몰트마스터로 지명받은 74년까지 10년간 시음·시향한 원액만 수만 가지는 될 것이다.”
당신의 이름을 딴 ‘더 발베니 DCS 컴펜디엄’이라는 시리즈를 출시했다.
"DCS 컴펜디엄은 지난해부터 2020년까지 매년 1개 컬렉션씩 총 5개의 컬렉션을 출시하는 프로젝트다. 쉽게 말하면 ‘스튜어트가 만든 발베니의 엑기스 시리즈’ 정도가 되겠다. 53년간 내가 만들어 온 위스키 철학을 담았다. 일반 위스키와 달리 내 인생과 위스키 제조 원칙 등을 담은 책도 함께 준다.”(DCS 컴펜디엄은 5병 한 세트에 8000만원이나 하고 한국선 한 세트만 판다. 하지만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인기다. 지난해에는 윌리엄그랜트앤드선즈코리아의 착오로 두 사람이 계약을 해버렸다. 결국 김일주 대표까지 나서 두 명 모두 구입할 수 있었다.)
수제 싱글몰트 위스키는 무엇이 특별한가. 같은 회사 술인 글렌피딕과의 차이가 궁금하다.
"수제라는 것은 125년 전 전통 방식 그대로, 자동화되지 않은 증류기로 사람이 만든다는 것이다. 보리 경작은 물론이고 수확·발효·숙성·증류 등의 전 과정이 사람에 의해 진행된다. 글렌피딕은 전 공정이 자동화돼 있다. 증류기를 가열할 때도 글렌피딕은 가스로 하지만 발베니는 증기를 쓴다. 물을 고르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좀 있다.”
53년 경력 중 대표 업적이 있다면.
"위스키 업계에서 ‘피니싱’ 기법이라고 있다. 한 가지 오크통으로 숙성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오크통을 써서 오묘한 맛의 블렌딩을 하는 것이다. 12년산 발베니 더블우드라면 11년6개월은 아메리칸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하고, 나머지 6개월은 유러피언 오크통으로 마무리(finishing)하는 시기다. 93년 내가 개발한 기법으로, 지금은 위스키 업계에서 대중화된 기술이다. 발베니 병에 내 사인을 넣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발베니에는 다른 위스키와는 다르게 몰트마스터 스튜어트의 사인이 라벨에 새겨져 있다.)
당신에게 위스키는 어떤 의미인가.
“53년간 위스키만 만들어 왔다. 위스키는 내 인생 아니겠나. 그리고 위스키는 나만의 상품이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대표 수출품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S BOX] “물·위스키 2 대 1로 섞으면 맛 좋아, 차갑게 마시면 향 떨어져”

53년간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들어온 주류 전문가는 어떻게 술을 마실까.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물을 타서 마시라”고 조언했다.

흔히 영국에서는 ‘애디드 워터’(added water), 일본에서는 ‘미즈와리’(水割り)라 불리는 음용 방법이다.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펍이나 바에서는 위스키를 한 잔 시키면 물이 안주처럼 함께 나온다”며 “물과 위스키를 2대 1로 섞으면 알코올 도수는 40~50도에서 20도대로 내려가고 향은 은은하게 퍼져 오히려 마시기가 더 좋다”고 강조했다.

스튜어트는 “술은 차게 먹어야 제맛”이라는 한국의 음주법에도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맛뿐 아니라 향을 음미하면서 마실 수 있는 술”이라면서 “냉장고에 넣어 차게 하면 향이 움츠러든다”고 말했다. 잔에 얼음을 넣어 먹는 ‘온더록스’도 마찬가지 이유로 권하지 않았다.

술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스튜어트는 평소에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근무 중에는 자가운전으로 출퇴근하기 때문이고, 주말에도 한두 잔 즐기는 수준이다. 발베니 외에 어떤 술을 즐겨 마시느냐는 질문에는 “위스키 중에서는 글렌로시스와 맥캘란, 스코틀랜드의 대표 맥주인 기네스를 즐겨 마신다”고 말했다. 경쟁 회사의 제품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리는 주류 업계의 분위기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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