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판 '해전사'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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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이하 '재인식')이 8일 출간됐다. '재인식'은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이하 '해전사')을 비판할 필요성에 공감한 국내외 학자 28명이 1년 넘게 준비해 내놓은 책이다. 그들이 비판하고자 한 '해전사'는 1979년 발간된 진보.좌파적 시각의 역사 논문집이다. '해전사'는 진보적 성향의 386세대들이 역사교과서처럼 중시했던 책이다.

'재인식' 발간에 앞장선 학자는 보수.우파 지식인 모임인 뉴라이트 네트워크 소속 이영훈(서울대).김일영(성균관대) 교수와 탈민족주의 이론가인 박지향(서울대) 교수 등이다. 이영훈 교수는 총론 격인 첫번째 논문 '왜 다시 해방전후사인가'에서 '해전사'식 역사인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해전사'를 80년대 좌파 운동권과 주사파 탄생의 배경이라고 진단했다.'해전사'를 읽은 80년대 진보세력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수립된 남한 정권을 '반혁명 세력'으로 규정하고, 반대로 김일성이 소련의 사주를 받아 만든 북한 정권을 민족통일을 위한 '민주기지'로 여겼다는 지적이다. 진보세력이 '해전사'식 역사인식에 따라 민주기지(북한)와 연대해 반혁명세력(남한)을 몰아내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꾀했다는 결론이다.

머리말을 쓴 박지향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학계의 부단한 연구로 '해전사'에서 제기된 주장들의 잘못이 지적되고 수정돼 왔는데도 그런 사실이 일반 대중에는 알려지지 않았다"며 '재인식' 출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 교수는 "'재인식'은 '해전사'의 민족지상주의와 민중혁명 필연론이 우리 역사 해석에 끼친 폐해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창립된 뉴레프트(신진보) 싱크탱크인 '좋은정책포럼'의 김형기(경북대 교수.노동경제학) 공동대표는 "과거 '해전사'에 어떤 편향이 있었다면 본격 논쟁을 통해 편향을 해소하며 보다 발전된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재인식'도 특정 이념에 집착해 비판하는 것이라면 또 하나의 편향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배영대 기자

*** 바로잡습니다

2월 1일자 1면 '뉴라이트판(版) 해전사 나온다' 기사, 9일자 1, 5면의 '뉴라이트판 해전사 나왔다' 기사, 13일자 1면 '과거사위 활동 검증할 것' 기사 등에서 언급한 '뉴라이트'란 표현은 맞지 않기에 바로잡습니다. 8일 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란 책은 진보.좌파 연구서인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을 전면 비판하는 성격의 논문집입니다. 본지는 8일자 '바로잡습니다'에서 "뉴라이트라는 표현은 지적 흐름을 의미하며, 구체적인 연구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9일자 보도 이후 이를 혼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새 책의 편집위원인 이영훈(서울대).김일영(성균관대) 교수 등은 지식사회의 뉴라이트 흐름을 대표하는 연구집단인 '뉴라이트네트워크'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집위원인 박지향 교수 등 일부는 탈민족주의적 역사관을 지닌 학자입니다. 박 교수는 책의 머리말에서 "'해전사'를 읽고 '피가 거꾸로 흘렀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을 접하고 우리 사회의 역사인식을 이대로 두고 본다는 것은 역사학자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출간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28명의 필진이 집필에 참여한 동기는 같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학문적 성향은 다양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성향의 필진이 참여해 만든 책을 '뉴라이트판'이라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재인식'을 '뉴라이트판 해전사'라고 더 이상 표현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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