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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분담” vs “사채권자에 전가”…대우조선 채무조정 둘러싼 3대 대안적 진실은?

중앙일보

입력

“회사채 보유자, 시중은행, 노조, 경영진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처절한 노력과 고통 분담이 없다면 결코 (구조조정이) 성립될 수 없다.”

사채권자들 “대우조선 구조조정 고통분담 전가” #①국책은 100% 출자전환?…실제로는 9.4% #②산은, 이미 책임 다했다?…현대상선은 두 번 걸쳐 49대 1 감자 #③주당 4만350원이 적정 가격?…산은도 5000원 추정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3일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 방안’ 발표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강조한 구조조정의 원칙이다. 이 같은 원칙에 따라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월급을 전액 반납했고, 대우조선 노조는 6일 10% 임금삭감 동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시중은행은 무담보채권의 80% 출자전환과 신규 선수금환급보증(RG) 제공에 동의하는 확약서를 7일까지 제출한다. 사채권자(회사채 보유자)들은 오는 17~18일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50% 출자전환과 50% 만기상환 유예 등의 채무조정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한다. 이 모든 것이 이뤄졌을 때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신규 자금 2조90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사채권자들 사이에서 고조되고 있다. 과연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이라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다. 사채권자들은 “정부의 채무조정안이 겉으로는 산은 등 국책은행이 가장 큰 손실을 부담하는 구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채권자에게 가장 큰 희생을 요구한다”고 반발한다. 이들의 주장을 점검했다.

유가 하락으로 선주들이 인수를 포기하거나 연기한 드릴쉽(해양 석유및 가스 시추선)들이 2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의 D암벽에 정박해 있다.송봉근 기자 (2017.3.29.송봉근)

유가 하락으로 선주들이 인수를 포기하거나 연기한 드릴쉽(해양 석유및 가스 시추선)들이 2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의 D암벽에 정박해 있다.송봉근 기자 (2017.3.29.송봉근)

①사채권자 출자전환 비율 가장 낮다?=정부가 제시한 채무조정안은 무담보채권이 대상이다. 산은과 수은 등 국책은행은 100%, 시중은행은 80%, 사채권자는 50%를 줄자전환 해야 한다.

쟁점은 RG다. 선박을 주문할 때 선주는 조선사에 선수금을 지급한다. 일종의 착수금을 지급하는 셈이다. 그러나 조선사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주문한 배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이미 낸 착수금을 떼인다. 선주는 이런 리스크를 줄이고자 금융회사가 RG를 발급해 달라고 요구한다. 돈을 떼이면 보증을 선 금융회사가 대신 갚으라는 의미다. 배가 정상적으로 인도된다면야 금융회사로서도 RG가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조선사에 문제가 생기면 RG는 고스란히 빚이 된다. 현실화는 안 됐지만 문제가 생기면 발생할 수 있는 ‘우발채무’다.

금융위는 대우조선이 법정관리에 가게 됐을 때 입을 수 있는 금융권 손실이 21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RG 콜(선주가 금융회사에 선수금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까지 포함한 손실 규모다.

사채권자들은 “전체 손실 규모를 따질 때는 RG를 포함하면서 고통분담을 요구할 때는 RG는 왜 빼느냐”고 주장한다. 이들은 RG를 포함한 총 여신 규모에서 출자전환 비율이 얼마인지를 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RG는 회사가 정상화돼서 배가 정상적으로 인도되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채무다. 고통분담을 해서 얻는 이익을 RG를 발급한 금융회사만 온전히 챙기지 사채권자는 누릴 수가 없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RG를 포함한 총 여신과 비교한 출자전환 비율은 국책은행이 9.4%, 시중은행이 20.8%, 사채권자가 50%다. 때문에 사채권자들은 “사채권자가 가장 적은 고통 분담을 한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며 “RG를 포함한 전체 여신에서 출자전환 비율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② “산은 이미 감자, 대주주 책임 다했다”?=일반적으로 구조조정 시 경영상 부실의 책임을 물어 대주주는 대규모 감자를 실행한다. 시중은행이나 사채권자들은 출자 전환 전에 대주주인 산업은행에 감자를 요구하고 있다.

산은은 그러나 “더 이상의 감자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7월 분식회계 사실이 입증되면서 주권이 거래정지됐고 8월엔 추가 부실인식으로 인해 완전 자본잠식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대주주인 산은은 지난해 말 2015년 12월 이전 지분은 모두 소각하고, 2조4000억원 규모 신규 지원을 통한 출자전환 주식은 10대 1 감자를 거쳤다. 주식 소각을 포함한 실질 감자 비율은 17.95대 1이다. 때문에 대주주로서 책임은 다 했다는 주장이다.

사채권자들은 그러나 다른 구조조정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감자 비율이 턱없이 낮다고 주장한다.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 대주주)는 49대 1, 동부CNI(동부제철 대주주) 100대 1, 금호석유화학(금호타이어 대주주) 100대 1 등 대부분의 대주주가 대규모 감자를 부담했다. 사채권자들은 “산은이 구조조정을 주도할 때는 대주주 책임론을 내세우더니 정작 본인이 대주주가 되자 책임론에서 쏙 빠졌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지난해 조건부 자율협약 당시 현대상선은 7대 1 감자 후 3개월만에 추가로 최대주주만 7대 1 무상감자를 했다”며 “산은이 이미 감자를 했기 때문에 책임을 다했다는 것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③ 주당 전환가액은 4만350원이 적정?=산은은 출자전환하는 주식의 주당 가격을 거래정지 직전 가격(4만4800원)에서 10% 할인한 주당 4만350원으로 정했다. 자본시장법상 출자전환주식은 시가를 기준으로 한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7월 주식이 거래 정지됐기 때문에 직전 가격에서 10% 할인한 가격으로 출자전환한다는 것이다.

통상 감자 뒤엔 주가가 폭락한다. 출자전환 전 감자를 하면 감자에 대한 기업가치가 주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출자전환으로 인한 손실이 그나마 줄어든다. 그러나 대우조선은 감자 당시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감자를 했는데도 주가 폭락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게다가 감사의견 ‘한정’으로 코스피200에서도 제외돼 주가 폭락은 예견된 상황이다. 익명을 요청한 증권사 관계자는 “산은 내부에서도 거래 재개 후 주당 가격을 5000원으로 추정했다”며 “이미 기존 지분 79.05%는 1원으로 평가해 손실 처리했다”고 말했다. 만약 주가를 5000원으로 가정하면 출자전환을 통한 회수율은 12.3%에 그친다.

경쟁 업체와 비교해서도 4만350원은 고평가된 가격이다. 자산가치를 반영한 주가수준을 의미하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대우조선은 1.28에 이른다. 현대중공업(0.68)이나 삼성중공업(0.65)의 두 배 수준이다. PBR은 높을수록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사채권자들은 “대주주가 1원으로 평가한 주식을 4만350원에 받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액면가 발행은 몰라도 최소 현대상선 출자전환 때처럼 30% 할인 가격에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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