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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1명 진로를 교사 9명이 토론 … 하나고가 ‘학종 명문’으로 뜬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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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1일 오전 8시30분 서울 은평구의 하나고등학교 본관 2층 회의실. 방과후수업밖에 없는 토요일 오전 3학년 8개 반 담임 전원과 조계성 교감이 모여 있다. 고3의 올해 대입 수시전형 지도 방향을 논의하는 ‘수시 전략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토요일에도 3학년 담임 전원 모여 #200명 학생부 보며 ‘수시 전략회의’ #지원학과·내신 등 놓고 갑론을박 #올 서울대 수시에서만 51명 합격 #“일반고도 교사끼리 팀플레이 필요”

회의가 시작되자 대형 스크린에 한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가 비춰졌다. 담임 교사는 “통계학과 진학을 원하는 학생”이라며 내신 성적, 교내 대회 입상 경력 등을 소개했다. 곧바로 교사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조상규(수학) 교사가 먼저 “선택과목으로 심화통계학을 듣지 않았다. 통계학에 대한 관심, 재능을 (입학사정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의 평가요소인 ‘전공 적합성’ 면에서 빈틈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효근(과학) 교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통계학은 듣지 않았지만 고급수학과 선형대수를 수강했고 성적도 좋다. 교내 활동도 수학과 관련돼 통계학과 진학에는 지장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학년부장인 이영수 교사가 지난 입시에서 서울대 통계학과에 합격한 졸업생의 학생부를 찾아 스크린에 띄웠다. 그는 “지난해 사례를 보면 심화통계학을 수강하지 않은 학생도 수학을 좋아하는 게 드러나면 합격엔 무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조 교감은 담임에게 “교사 추천서에 한 학기 수강 과목 수가 제한돼 통계학을 들을 기회는 놓쳤지만 수학을 무척 좋아한다는 점을 언급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처럼 학생 한 명의 학생부를 볼 때마다 짧게는 5분, 길게는 15분 이상의 토론이 계속됐다. 4시간여의 회의 동안 모두 18명의 학생부를 확인했다. 이 부장교사는 “200명인 고3의 학생부를 모두 보려면 ‘마라톤 회의’를 며칠씩 해야 한다. 올해도 5일간 회의를 잡아뒀다”고 말했다.

하나고는 하나금융그룹에서 설립한 자율형사립고로 2010년 개교했다. 3년 뒤 배출한 첫 졸업생 중 44명이 서울대 수시 전형에 합격하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올해도 51명이 서울대 수시에 합격해 대원외고(41명), 외대부고(39명), 민사고(30명)보다 높은 성적을 거뒀다.

수시 전략회의는 첫 신입생이 3학년이 된 2012년 도입됐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일반·심화·전문과목으로 나뉜 다양한 선택과목, 활발한 동아리 활동 등과 함께 교사들이 모든 학생의 학생부를 면밀히 검토하는 하나고의 독특한 방식이 학종 합격자를 다수 배출하는 데 기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종에서 교사들의 ‘팀플레이’가 중요하다.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효근 교사는 “정시에선 성적을 기준으로 합격, 불합격이 명확히 갈려 담임 한 명이 충분히 진학 지도를 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학생을 입체적으로 평가하는 학종에서는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학생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수시전략회의에 대해 일반고 교사들은 효용은 인정하면서도 실제 도입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안연근 잠실여고 진학교사는 “공립고의 경우 5년 이상 한 학교에 근무할 수 없는 ‘순환근무제’를 하다 보니, 교사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할 만한 분위기가 자리 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도 “하나고는 우수학생이 몰리는 자사고라 전교생이 몇몇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지만, 일반고 졸업생은 서울대부터 전문대까지 진학 범위가 넓다 보니 하나고처럼 세심한 지도를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진학교사와 학부모는 학생 진로를 위해 교사들이 협업하는 문화만큼은 확산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안성환 대진고 진학교사는 “학생들을 위해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는 문화 자체가 부럽다”며 “일반고에서도 교사 간에 공유, 협업의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학생 교육도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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