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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1800만원 들여 수술 받는 귀하신 '할머니 은행나무'

중앙일보

입력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은행나무. [사진 광주광역시 남구청]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은행나무. [사진 광주광역시 남구청]

고싸움놀이로 유명한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는 특별한 나무가 한 그루 있다. ‘할머니 당산나무’로 불리는 수령 650년(추정) 된 은행나무다.

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 전날 이 나무 앞에서 예를 갖추고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과 가족의 평안을 기원한다.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는 할머니 당산나무가 1800만원이 드는 ‘수술’을 받는다. 마을의 상징이자 광주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0호인 나무를 지금 모습 그대로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서다.

광주광역시 남구는 5일 “이달 중순부터 한 달여 간 은행나무 보수·정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높이 25m, 둘레 13m 규모인 나무에는 현재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은행나무. [사진 광주광역시 남구청]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은행나무. [사진 광주광역시 남구청]

당산나무 보수·정비는 ‘외과 수술’로 시작한다. 우선 철제 지지대와 맞닿아 썩은 부위와 병균이나 해충으로 생긴 상처 부위를 제거한다.

이후 살균·살충을 거쳐 방부·방수 작업을 한 뒤 나무의 건강 상태에 영향을 주지 않는 재질로 된 지지대를 새로 설치한다. 사람으로 치면 깁스 역할을 하는 고정 장치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의료시설인 삼성서울병원에서 부유층들이 주로 이용하는 프리미엄 건강검진 비용은 1인당 432만원이다. 할머니 당산나무 수술에는 이 보다 4배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 나무가 ‘사람만큼이나 귀한 나무’로 불리는 이유다.

사람도 수술을 받기 전 보호자의 동의를 받는 것처럼 문화재인 이 나무를 함부로 건드리면 처벌 대상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은행나무. 김호 기자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은행나무. 김호 기자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 자체는 물론 주변 환경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법 제99조(무허가 행위 등의 죄)는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구청은 지난달 어떤 내용으로 나무를 보수·정비할지 계획서를 광주광역시 문화재심의위원회에 제출했다.

이에 심의위는 지난달 30일 회의를 열어 ‘조건부 허가’를 결정했다. 이 나무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남구청 측에 계획서보다 더 꼼꼼하게 보수·정비를 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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