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잊지 말자"던 문원준 해양대 명예사관장의 안타까운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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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같은 무참한 인명사고가 바다 위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실력은 물론 사명감을 갖기 바랍니다.” 지난해 1월 27일 열린 한국해양대 제68기 졸업식에서 2000여명의 졸업생을 대표해 연단에 오른 명예사관장(학생회장) 문원준(24)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문씨는 “졸업식에서 언급하기는 다소 무겁지만, 우리에게는 가깝게 관련된 사건”이라며 세월호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누구보다 오랫동안 세월호 사고를 기억했으면 한다”며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무책임하게 회피하거나 봐주기식 대응을 하지 않는 용기와 힘을 기르는 68기가 됐으면 한다”는 말로 재학생 송사에 대한 답사를 마무리했다.

문씨는 졸업과 동시에 폴라리스쉬핑에 입사했다. 지난 2월 스텔라데이지호에 승선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문씨를 포함한 한국인 8명과 필리핀 선원 16명을 태우고 남대서양 인근을 지나던 중 지난달 31일 침몰했다. 3일 현재 필리핀 선원 2명이 구조됐고, 나머지 22명은 실종 상태다.  

문씨 아버지 문승용(59)씨는 배려심이 많은 아들이었다고 했다. 아버지 문씨는 “명예사관장을 할 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찾아내 이들을 위한 모금활동을 하고 자신의 용돈을 보태 장학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며 “상대방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생각하고 실천하는 아들이어서 이번에 사고가 났을 때도 주위 선원들을 먼저 챙겼을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문씨 어머니는 2년 전 위암 수술로 건강이 좋지 않아 부산에 마련된 사고대책실에 오지 못했다. 아버지 문씨는 “아내가 위암 수술로 13㎏이 빠질 정도로 몸이 약해져 있는데 이번 일로 더 큰 충격을 받을까 봐 걱정이다”며 “집에서도 막내이고, 배에서도 막내였던 아들이 씩씩하게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희망을 내비쳤다.  


아들 문씨가 졸업식에서 밝힌 '세월호처럼 무참한 인명사고가 바다 위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실력을 기르자'는 바람은 지켜지지 않았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 폴라리스쉬핑은 사고 발생 12시간이 지난 2일 오전 11시 6분에 정부 당국에 늑장 보고했고, 정부는 우왕좌왕하다 브라질 공군의 협조를 이끌어내는데 하루를 또 허비했다.

브라질 공군의 C-130 항공기가 사고 해역에 도착한 시각은 사고가 일어난 지 37시간이 지난 뒤였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선사의 늑장 보고와 컨트롤타워 없는 정부의 헛발질로 수색 항공기가 하루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혼선은 또 있었다. 3시간동안 이어진 1차 수색 작업에서 별다른 성과없이 끝나자 선사는 곧바로 2차 수색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김완중 폴라리스쉬핑 회장은 지난 2일 오후 8시 실종 선원 가족들이 모여 있는 부산으로 내려와 “방금 외교부 재외국민안전과 영사국장이 브라질 공군 수송기로 2차 수색을 조만간 진행하겠다고 연락해왔다”며 “사고 해역은 현재 낮이고, 사고 발생 42시간이어서 골든타임(48시간)이 아직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차 수색을 위한 브라질 공군의 P-3 항공기는 김 회장 발언 이후 15시간이 지난 3일 오전 10시 40분(현지시각 2일 오후 10시 40분) 브라질에서 출발했다. 항공기보다 훨씬 낮은 고도로 면밀하게 수색할 수 있는 헬리콥터를 탑재한 배는 5일쯤 사고 해역에 도착할 예정이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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