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예의 갖추되 할 말 하는 시진핑, 동의 못할 땐 즉각 받아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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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특파원이 미리 본 시진핑 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6~7일(현지시간) 첫 정상회담을 연다. 무역 불균형·북핵 등 의제들을 두고 치열한 수싸움이 예상된다. [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6~7일(현지시간) 첫 정상회담을 연다. 무역 불균형·북핵 등 의제들을 두고 치열한 수싸움이 예상된다. [중앙포토]

“정중하게 예의는 갖추되 할 말은 분명히 한다. 동의할 수 없는 얘기가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면 그냥 넘기지 않고 반론한다.”

미·중 정상회담 D-3 #오바마와 남중국해 논의 때 #현안 꿰뚫고 조목조목 대응 #북핵은 대화 강화 수준 봉합 #대미 무역흑자 불만에는 #대규모 투자 선물 꺼낼 수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 스타일을 요약한 것이다. 시 주석과의 양자 정상회담에 배석 경험이 있는 외교 당국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시 주석은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일정한 톤으로 말하면서도 맺고 끊는 게 분명하다. 상대방의 발언을 경청하지만 마지노선은 반드시 지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 주석의 첫 정상회담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넘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좀처럼 없는 이유다.

기대 서로 안 높아 대화 잘 풀릴 수도

선례도 있다. 시 주석이 미국을 국빈 방문했던 2015년 9월의 미·중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시 주석은 백악관 만찬이 끝난 뒤 소수의 배석자만 대동한 가운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났다. 3시간 동안 이어진 비공식 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남중국해 통항 문제 ▶중국의 대미(對美) 사이버테러 공격 등 껄끄러운 현안으로 시 주석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시 주석은 “남중국해 항행은 연안 국가들끼리 논의할 일이다. 미국은 역외국가에 불과하다”거나 “미국에 의해 우리 기업 컴퓨터가 해킹당했다는 조사 결과도 갖고 있다”며 조목조목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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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은 중요 의제에 대해서는 즉석 반론이 가능할 정도로 현안을 꿰뚫은 상태에서 회담에 임한다”고 말했다. 참모들과의 자료 독회(讀會) 등 치밀한 준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 주석 본인이 외교 분야 최고위 컨트롤타워인 외사공작영도소조 소조장으로 평상시에도 현안을 챙기기 때문이다.

펑리위안

펑리위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이뤄지는 이번 회담도 그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낌새가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덤핑 관세 및 상계관세 강화를 검토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선제 펀치를 날렸다. 중국은 정쩌광(鄭澤光)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나서 “미국 정부가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제품 수출 규제와 중국의 대미 투자 규제를 완화하면 무역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시터후이(習特會·시진핑-트럼프 회담)’가 의외로 잘 풀릴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두 정상이 서로 주고받을 게 분명한 데다 기대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첫 회담인 만큼 이번 회담의 최대 의제는 양국의 관계 설정에 관한 논의가 될 전망이다. 당선 전부터 노골적으로 반(反)중국 발언을 쏟아낸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하나의 중국’ 원칙을 명확하게 확인받고 “미·중은 양자 관계 및 국제 현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는 수준의 발언만 이끌어내도 시 주석은 커다란 성과로 삼을 수 있다.

중국이 특히 기대하고 있는 것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3월 방중 때 언급했던 “충돌하지 않고(不衝突) 대립하지 않으며(不對抗) 상호 존중하며(相互尊重) 합작공영(合作共榮)한다”는 ‘14자 방침’의 재확인이다. 이는 시 주석이 2013년 6월 첫 방미 이래 줄곧 제기해 온 ‘신형대국관계’의 기본원칙이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반면 “중국은 막대한 무역적자를 안기고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나라”란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시 주석이 대규모 투자나 수입 계약 체결 등의 ‘선물’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의제 고려할 때 사드 논의는 미지수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은 양국 관계에 대한 명분을 얻고 트럼프는 실리를 챙기는 방법으로 ‘윈윈’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인 중국의 역할을 요구하면 시 주석은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자는 수준에서 봉합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를 엄격히 이행하되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할 전망이다. 한정된 시간과 의제의 우선순위를 고려할 때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시 주석이 먼저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예영준베이징 특파원

예영준베이징 특파원

트럼프와 시진핑. 두 사람 모두 ‘스트롱 맨’이란 공통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화법은 판이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설도 서슴지 않을 만큼 직설적인 스타일인 반면 시 주석은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격식 있게 말하는 걸 즐긴다. 회담이 평행선을 달릴지, 과거 닉슨-마오쩌둥(毛澤東)이 그랬던 것처럼 단숨에 의기투합할지 두고 볼 일이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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