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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제'의 시인, 김종길 고대 영문과 명예교수 별세

중앙일보

입력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에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ㅡ.//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2004년 시집 해가 많이 짧아졌다를 냈을 당시 고 김종길 시인의 모습 [중앙포토]

2004년 시집 해가 많이 짧아졌다를 냈을 당시 고 김종길 시인의 모습 [중앙포토]

 교과서에 소개돼 널리 읽힌 시 '성탄제'의 시인 김종길(본명 김치규) 고려대 영문과 명예교수가 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1세. 

 고인은 지난달 21일 부인 강신향씨를 사별한 충격으로 힘들어 했다고 유족이 전했다. 1926년 경북 안동 출생인 고인은 1947년 경향신문으로 등단했다. 서구의 이미지즘 시학을 받아들이면서도 한학 전통을 살려 품격을 지닌 시세계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려대 영문과에서 30년 넘게 재직하며 현대 영미시와 시론을 소개하고 한시와 한국 현대시를 영어로 번역했다. 

시집으로 『성탄제』『황사현상』(1986) 『해가 많이 짧아졌다』(2004), 시론집 『진실과 언어』(1974) 『시에 대하여』(1986)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와 한국현대영미시학회, 한국 T.S. 엘리어트학회 회장,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등을 지냈다. 목월문학상·인촌상·청마문학상·육사시문학상·이설주문학상을 수상했고 국민훈장 동백장,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선국(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민(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선경·선형·선숙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 발인은 4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 02-923-4442.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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