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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LOOK] 아재파탈 박성웅이 돌아온다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어느 영화감독은 운전 중에 배우 박성웅의 필모그래피를 보다가 차를 멈췄다고 한다. 너무 짠해서. 무려 60여 편에 육박하는 그의 출연작들을 보면 영화 <신세계>의 이중구 역을 만나면서 비로소 그가 맞게 된 인생의 봄날이 결코 운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국외대 법학과를 졸업했지만 이내 법조인이 아닌 배우의 길을 선택해 고집스럽게 걸어온 지 20여 년. 어느새 무명에서 존재감 있는 조연을 거쳐 섹시한 중년 남자로 주연 자리까지 꿰찬 배우 박성웅을 만났다.
그는 박해진과 함께 주연을 맡은 JTBC드라마 <맨투맨>의 방영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는 톱스타의 경호원이 되는 한 남자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쯤에서 청춘 스타인 박해진이 톱스타, 박성웅이 경호원 역할일 것이라 예상하기 쉽지만 반대로 박성웅이 한류 스타 역이다. 메이킹 영상에서 박성웅은 자신이 맡은 여운광 역을 두고 “스턴트맨이었다가 악역 전문 배우가 돼서 한류 스타가 되는, 따뜻한 모습은 있는데 그것을 잘 들키지 않으려 하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이토록 실제의 그와 흡사한 역할이 또 있을까. 박성웅의 더없이 리얼한 연기가 기대되는 JTBC 드라마 <맨투맨>은 4월 21일 금요일 밤 11시에 첫 방송된다.

Q. 며칠 전 뮤지컬 <보디가드>의 마지막 공연을 했다죠. 생애 첫 뮤지컬이었는데, 공연을 마친 소감이 어떤가요?
A. 내일 또 공연장으로 출근해야 될 거 같은 기분이에요. 평소대로라면 어제도 공연장에 가는 날이었는데, 이제 끝났으니 가지 않았죠. 아, 그래서 어제 내 기분이 그렇게 헛헛했구나! 다음 뮤지컬은 정식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뒤 해보고 싶어요.

Q. 뮤지컬과 드라마 촬영이 끝난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A. 내년에 큰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서 그 준비에 올인하려고요. 단주하고 매일 운동하면서 몸을 만들 생각이에요. 배우는 그렇게 도전할 거리가 있어야 좋아요. 안 그러면 뭘 위해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고 공허해지거든요. 사실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공허감을 느껴요.

Q. 작품에서 빠져나와 일상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인가요?
A. 특히나 이번에는 <꾼>이라는 영화까지 해서 총 세 작품을 동시에 했거든요. 그래서 휴식을 취할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지난 6개월 동안 두세 시간씩 자며 촬영에 임해서 그런지, 갑자기 아무 일도 없이 휴식하려니까 너무 적응이 안 되는 거예요.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시계 보고 깜짝 놀라서 깼는데, 막 옷을 입고 나가려다 보니 갈 데가 없더라고요. 빨리 아들이랑 놀러가야 할 거 같아요. 다다음 주에 삼척가기로 했어요. 거기 가면 동자가 있을까요? 삼척동자.

Q. 아, 이런 개그 좋아하는군요!
A. 하나님이 버스 타고 가다가 내리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 신내림. 그 뒤에 스님이 도중에 내리면? … 중도 하차!

Q. 촬영장에서도 이런 농담 자주 하나요?
A. 네. 이런 유머가 실린 책이 있는데 많이 보고 얘기해 주죠(웃음).

Q. 드라마 <맨투맨>에서 한류 스타 역을 맡았어요. 이번에는 악역이 아닌가요?
A. 전혀요. 박해진과 의기투합해서 악을 물리치는 역할인데, 제가 맡으면 왠지 다 악역일 거 같나 봐요. 이상해요. <신세계> 때의 캐릭터가 너무 강하게 남아서 그런가? 악역을 맡을 때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기대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악역 말고도 좋은 역할 많이 했거든요. 전작 <리멤버>도 조폭 출신의 변호사지만 키다리 아저씨 같은 캐릭터였고, <검사외전>에서도 악역이 아니었죠.

Q. 이번 드라마 <맨투맨>에서 한류 스타 여운광을 연기하는 건 어땠어요?
A. 촬영하는 내내 힘들었어요. 내가 여운광인지 박성웅인지 헷갈릴 정도로 연기와 실제 생활이 잘 구분되지 않는 상황까지 갔는데, 이런 경험은 연기 인생 21년 만에 처음이에요. 힘들었지만 그만큼 드라마는 잘 나온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기고만장한 여운광으로 진짜 마음대로 행동하다가, 뮤지컬이나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다시 겸손한 모습으로 돌아와 제 자신을 정화하곤 했죠.

Q. 박해진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A. (박)해진이는 MBC <에덴의 동쪽> 때 만나고 10년 만에 다시 만난 거예요. 10년 만에 만나서 첫 리딩을 마친 날,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이 친구가 전혀 변하지 않은 거예요. 예전과 똑같았어요. 그 덕에 해진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브로맨스도 잘 표현된 것 같아요.

Q. 한류 스타 역이라니 의외의 캐스팅이기도 해요.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네요
A. 저는 항상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선입견, 편견을 뒤집는 걸 좋아해요. 저를 보면 많은 분이 악역을 떠올리지만 저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아빠거든요. 그래서 휴먼, 코미디 등에서 제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어서 항상 기회를 기다리고 있고요. 물론 배우니까 어떤 역할이든 자신있어요. 이번 드라마는 제가 <리멤버> 때 함께했던 이창민 감독님의 작품이에요. <리멤버> 때 제 또 다른 면을 발견한 분이라 이번에도 믿고 맡겨주신 거죠.

Q. 연기 잘하는 중년의 남자 배우들은 꽤 많아요. 그런데 박성웅만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한류 스타 역을 맡게 된 것일까요? 중년의 섹시함?
A. 많은 분이 아재 파탈, 중년의 섹시함, 중년돌 같은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시대를 잘 만난 것 같아요. 지금은 40대 남자 배우 전성시대잖아요. 예전에 한진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선생님 시절에는 30대가 전성기였다고. 또 10년 뒤면 50대가 전성기가 될지도 몰라요. 할리우드처럼 되는 거죠. 젊었을 때 좋은 배우가 있고, 나이 들어서 좋은 배우가 있는 거 같아요. (조)진웅이도 저랑 비슷한 경우인데, 둘 다 고생 많이 했고 조금 늦게 시대를 잘 만났죠. 그래서 저도 이런 역할을 맡은 듯하고요. 저한테 여덟 살짜리 아들이 있는데도 아직 총각으로 캐스팅을 많이 해주세요. 넓은 영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봐줘서 그게 참 다행이에요. 물론 아빠 역할도 할 수 있어요. 실제로 아빠니까 또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Q. 시대는 모든 중년 배우들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바, 유독 조진웅과 박성웅에게 기회가 주어진 이유가 있겠죠?
A. 글쎄요. 너무 잘생기지 않아서? 진웅이도 저도 결혼을 했으니까 더 편하게 봐주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얼굴이 잘 나오건 말건, 주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진짜 연기를 보여주는 모습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요즘 관객이나 시청자들은 굉장히 스마트하잖아요. 물론 제 ‘등빨’이 한몫하는 거 같기도 하고요. 엑스트라나 단역 시절에는 키 크다고 핀잔을 받았는데, 이제는 키가 커서 좋다는 얘기를 듣네요.

Q.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출연작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몇 작품인지 본인은 알고 있나요?
A. 아뇨, 몰라요. 제가 그렇게 많이 했나요? (조)진웅이도 그 정도는 했어요. 그런데 저도 팬들이 블로그에 필모그래피 올린 거 보고 깜짝 놀라긴 했죠. 어떤 영화감독이 그 필모그래피를 보고 운전하다가 차를 멈췄대요. 이렇게나 많이 했다니 너무 짠해서.

Q. 단역이나 조연 위주였지만 이제는 주연급 배우예요. 서는 위치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죠? 촬영할 때의 시각이 좀 달라졌나요?
A. 그런 변화는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좀 더 책임감이 생겨서 더 열심히 하는 거? 그리고 조연을 할 때는 제가 주연들한테 약간 들이댔어요. <신세계> 때 특히 그랬던 것 같아요. 어차피 내가 (최)민식 형이나 (황)정민이를 연기로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챔피언들에게 저는 도전자 입장으로 많이 들이댔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거꾸로 동생들이 들이대고 제가 그걸 받아줘야 하는 입장이 됐죠. 그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작은 역이든 큰 역이든 늘 최선을 다해야 되니까.

Q. 많은 사람들이 배우 박성웅 하면 영화 <신세계>의 이중구를 떠올려요. <신세계> 외에도 대중들이 다시 봐줬으면 하는 대표작을 꼽는다면?
A. 좀 가볍고 밝은 역할이었던 걸 봐줬으면 좋겠어요. 아, 없나(웃음)? 영화 <검사외전>에서도 나름 귀여운 검사였잖아요. 그리고 <그대 이름은 장미>라는 영화가 곧 개봉될 건데 태어나서 싸움을 한 번도 못해 본 정형외과 원장으로 나와요. 같이 촬영했던 영화 <꾼>에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니 기대해 주세요.

Q. 법대 출신인데 법조인이 아닌, 배우가 된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나요?
A. 단 한 번도 없어요. 고생했지만 저는 힘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잘될수록 중압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꿈을 좇아서 열심히 할 때는 힘든 줄 몰랐는데, 꿈을 이루니 이게 끝이 아니구나 싶어요.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 참 어려운 직업인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 힘든 건 괜찮은데 정신적으로 힘들고 혼란스러운 순간이 와요. 그래서 할리우드 배우들이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정신과 상담을 받나 봐요. 후회는 안 하는데 정말 쉬운 직업이 아니라는 점을 이번에 절실히 느꼈어요. 사실 뮤지컬을 하면서는 너무 재미있었어요. 연극 하던 시절에 서보고 16년 만에 처음 서는 무대였죠. 힘든 마음을 무대 위에서 다 풀었고 친동생 같은 후배들에게 치유를 받을 수 있었는데, 다 끝나고 나니까 치유받을 곳이 없네요. 이제 아들한테 치유를 받아야죠. 그런데 아들이 요즘 저랑 잘 안 놀아주네요.

Q. 10년 후, 20년 후의 배우 박성웅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A. 영화 <반칙왕> 찍을 때 김수로 형이 저한테 10년만 해보라고 했거든요. 그때가 3년 차였는데 7년을 더 버텼더니 <태왕사신기>가 저한테 왔죠. 또 10년을 버텨서 지금 이 자리에 왔으니, 또 10년을 하면 지금보다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그때는 좀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고, 쓸데없는 생각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연기에 대한 생각은 많아지고, 그 외의 잡생각은 없어졌으면 해요. 그리고 생각이 늙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그래서 제가 썰렁한 농담을 계속하는 거예요. 감 잃지 않으려고요. 혹시 세상에서 제일 긴 음식이 뭔지 알아요? 참~기름. 두번째로 긴 음식은? 들~기름(웃음)!

editor 김강숙 (kim.kangsook@joins.com)
photographer 김도원 hair 수아(애브뉴준오) makeup 김미소(애브뉴준오) stylist 김지연, 이건우(유포리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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