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개봉한 영화 ‘토탈리콜 2012’에서 주인공 퀘이드는 ‘손바닥’으로 통화를 한다. 전화기 칩이 이식되어 있는 손바닥을 유리에 갖다 대면 유리에 동영상 화면이 뜨면서 화상 통화가 시작된다.
영화에서처럼 ‘손바닥 통화’를 할 수 있는 기술의 단초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제공됐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홍용택 교수팀(변정환, 이병문 연구원)은 신체에 부착돼 신체 모양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전자기판(PCB·Printed Circuit Board)을 최근 개발해냈다. 영화에서는 손바닥 안에 칩을 삽입하지만 홍 교수팀의 기술은 칩이 내장된 매우 얇은 기판을 파스처럼 손바닥에 붙이는 방식이다. 여기에 어떤 칩을 넣느냐에 따라 이 ‘파스형 전자기판’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해진다.
기존에도 파스 안에 칩을 내장해 피부에 붙이는 기술은 있었다. 병원에서 맥박을 재기 위해 환자의 몸에 붙이는 파스형 맥박 측정기 등이 그 예다. 하지만 기판 소재가 딱딱하고 거칠어 손바닥이나 팔목처럼 움직임이 많고 둥근 신체 부분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웠다. 또 피부에 완벽히 밀착되지 않아 신체 정보가 부정확하게 측정되기도 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홍 교수팀은 먼저 50㎛(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 두께의 아주 얇으면서도 유연한 기판을 먼저 만들었다. 기판 내부에 탄성력이 높은 플라스틱 물질을 삽입하는 기술을 활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판 내부에 칩들을 배열한 뒤 배선이 칩과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접착 기술을 만들었다. 그 결과 기판을 잡아당겨도 칩은 그대로 있고 배선만 늘어나면서 칩 성능에는 손상이 가지 않는 전자기판이 완성됐다.
홍 교수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손목 패치형 LED 시계’ 등 웨어러블 기기를 구동해냈다. 손목에 LED칩과 배터리가 내장된 기판을 붙이면 칩에 불이 들어오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홍 교수는 “이번에 개발된 전자기판은 신체 어느 부분에 붙여도 완벽히 밀착돼 내 피부 같을 뿐 아니라 맥박이나 온도, 혈압 등을 정확하게 체크할 수 있다”며 “앞으로 유연한 디스플레이 개발 기술 등이 더해지면 팔목에 붙이는 ‘파스형 스마트 워치’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지난 24일 온라인 게재됐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