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속 157㎞ 광속구 … 영점 잡은 ‘한슝쾅’ 0점 행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승혁

한승혁

강속구가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를 향했다. 그런데도 타자의 배트는 허공을 갈랐다. 전광판에 ‘157(㎞/h)’이란 숫자가 찍혔다.

제구 좋아진 KIA 투수 한승혁 #공 빠르지만 불안했던 ‘미완 대기’ #투구 폼 다듬고 멘탈 다져 대변신 #시범경기 5경기 5이닝 무실점 역투 #허벅지 27인치 ‘탄탄한 하체’ 강점 #팬들 “꿈의 160㎞ 볼 수 있나” 기대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오른손 투수 한승혁(24)이 시범경기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시속 157㎞의 ‘광속구’로 5경기에서 5이닝 1피안타·무실점을 기록한 덕분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대표팀의 무기력한 모습에 실망했던 야구팬들은 한승혁의 강속구를 보며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다”며 열광하고 있다. 지난 21일 광주에서 만난 그는 “(쏟아지는 관심에)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한승혁은 원래 빠른 공을 잘 던졌던 투수다. 지난해 한승혁의 직구 평균 시속은 148.98㎞로, 500개 이상 공을 던진 국내 투수 가운데 가장 빨랐다. 그래서 KIA팬들은 그를 ‘한슝쾅(한승혁의 공이 슝 날아가 포수 미트에 쾅 꽂힌다는 뜻)’이라고 부른다.

그는 덕수고 시절부터 시속 150㎞의 공을 던졌다. 모자 챙에 ‘내 공은 아무도 못친다’라고 써놓고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한승혁은 2011년 KIA에 입단(전체 8순위)하자마자 오른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1년 간의 재활훈련을 마치고 마운드에 섰지만 볼 컨트롤이 좋지 못했다. ‘미완의 대기’라는 수식어는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 다녔다.

그러나 올시즌 한승혁은 달라졌다. 시범경기에 선을 보인 그의 강속구는 영점(零點)이 잡힌 것처럼 보였다. 자신있게 내리 꽂는 매력적인 강속구에 정확성이 더해진 것이다. 변화는 2015시즌 후 팀 마무리 훈련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대진 KIA 투수코치가 그에게 투구 폼 변경을 제안했다. 한승혁은 “제구력에 대한 지적이 매년 나왔고, 나도 부족한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변화를 시도하는 게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한승혁은 자신을 지도해준 이대진 코치를 믿고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의욕이 앞선 나머지 지난 시즌 초 옆구리 부상을 당했다. 6월 중순 복귀한 이후 그는 3승2패9홀드 평균자책점 4.86을 기록했다. 데뷔 이후 가장 좋은 피칭이었다. 한승혁은 “지난 시즌 말부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게 이어져 올해 시범경기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무조건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애쓰다 보면 피칭 밸런스가 흔들려 제구가 나빠진다. 수많은 강속구 유망주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쓰러진 이유다. 그래서 투수들은 제구력을 높이기 위해 스피드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단점을 보완하려고 장점을 버리는 것이다.

한승혁은 속도와 제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노력했다. 과거 한승혁의 폼은 힘을 모으는 동작이 컸다. 글러브에서 공을 뺀 뒤 엉덩이 부근에 놓았다가 공을 던지기까지 군더더기가 많았다. 힘은 최대한 쓰되 팔 스윙을 간결하게 만들자 컨트롤이 좋아졌다. 릴리스포인트(공을 손에서 놓는 지점)를 최대한 앞쪽으로 끌고간 것도 제구에 도움이 됐다.

자신감도 그를 변화시킨 원동력이다. 과거 한승혁은 볼넷을 내주거나 홈런을 맞으면 고개를 푹 숙인 채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결과에 관계없이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부러 거울을 보며 표정 연습도 한다”며 “예전에는 잘 치는 타자를 상대할 때 주눅이 들었는데 지금은 타자보다 내가 더 크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른다”고 했다.

한승혁의 아버지는 배구 국가대표 공격수로 활약했던 한장석(55)씨다. 한승혁은 “아무래도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빠른 공을 던지는 것 같다”고 했다. 탄탄한 허벅지는 강속구의 원천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하체 운동에 신경썼다. 고교 시절 허벅지 둘레가 26~27인치 정도였다. 지금은 조금 늘어났을 거다”고 했다. 그는 또 “부모님의 정성 덕분에 어렸을 때 좋은 음식을 많이 먹었다. 학교 다닐 때 늘 배가 불러 매점을 다닌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김기태 KIA 감독은 그를 이번 전지훈련 최우수선수로 뽑았다. 김 감독은 “승혁이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한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칭찬했다. 한승혁은 “나는 아직 미생(未生)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갈길이 멀다. 앞으로 더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공을 던지겠다”고 했다.

쌀쌀한 날씨에서도 강속구를 뿌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팬들은 한승혁이 ‘시속 160㎞’의 공을 던지길 기대한다. 그러나 한승혁은 단호하다. 그는 “볼 스피드가 더 늘어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컨트롤이 우선”이라고 했다.

광주=김원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kim.w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