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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똑똑하게 보려면 안경부터 깨끗하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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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호 22면

도쿄에 사는 친구가 서울에 왔다. 오랜만의 해후는 반가웠다. 최근 최순실 사태의 관심과 우려가 빠질 수 없다. 자상하게 도표까지 동원해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일본 언론사의 치밀함도 전했다. 나라 밖에서 제 조국을 걱정하는 친구의 표정은 심각했다. 빠른 수습으로 혼란이 멈춰져야 한다는 마음이야 뭐가 다를까.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57> #안경 클리너 후끼 후끼

선물을 하나 받았다. 안경잡이 친구를 생각해 하네다 공항에서 일부러 샀다는 안경닦이다. 눈 쓸 일이 많으니 깨끗하게 세상을 보라는 거다. 안경렌즈가 잘 닦여 일본에서 인기 많은 제품이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상대를 고려한 섬세한 선택의 선물이란 얼마나 고마운가. 떨어져 살았던 세월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았다. 감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외국에 나갔다 돌아올 때 쫓기듯 선물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냥 넘길 수 없으니 체면치레라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도 크다. 만만한 게 공항 면세점이다. 이리저리 돌아보다 결국 과자나 초콜릿 아니면 술이나 향수 같은 걸 산다. 적당한 면피의 아이템으로 이보다 마땅한 선물을 찾기도 쉽지는 않다.

문제는 반복이다.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달라질 건 별로 없다. 그저 그런 관행으로 굳어지게 마련이다. 받는 사람의 표정도 별로 다르지 않다. 자기만을 위한 특화된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 선물에 감동받을 리 없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러려니 여기는 성의의 표시는 무감각해져버린 느낌이다.

감동이란 크고 엄청난 것보다는 작고 사소한 것에서 오히려 크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선물이 그렇다. 일 대 일의 대응이 아니라면 별 이야기와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꽤 오래전 일이지만 가수 노영심이 선물에 관한 책을 낸 적 있다. 받은 선물 가운데 자기를 생각해 준 예쁜 손톱 깎기가 인상에 남는다는 얘기가 기억난다. 노영심 역시 선물을 할 때 상대가 생각지 못했던 자잘한 물건을 선택한다는 거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라면 테이블에 걸쳐놓는 가방걸이 같은 것들이랄까.

불편함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마음씨

우리나라에 안경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 숫자만큼 안경 관련 액세서리도 많이 나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안경 살 때 끼워주는 안경집과 극세사 안경닦이가 전부다. 수십 년 안경에 포박되어 살았지만 이 이상의 관련물품은 별 기억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안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란 얼마나 많은가. 굴러다니는 안경을 놓아둘 거치대도 필요하다. 노안용 안경을 쓴다면 줄에 묶어 목에 거는 것도 필요하다. 게다가 먼지와 지문에 더러워지는 안경을 닦는 좋은 클리너도 필요하다. 필요는 넘치는 데 행간을 메우는 물건은 없다.

“이런 자잘한 물건까지 만들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대범한 우리나라 사람의 기질 때문일 것이다. 세상사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어려움을 모른다. 안경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많은 안경잡이들의 불편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자상함을 요구하는 일은 지나친 기대일까.

일본에 대한 부러움은 이 지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필요에 대응하는 세밀한 선택의 다양함이 널렸다는 점이다. 세상의 물건은 인간의 이로움을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안경 쓴 사람에게 가장 쓰임이 많은 것은 수시로 사용해야 하는 안경닦이다. 안경 살 때 끼워주는 천 하나로 버티는 게 보통이다. 잃어버리면 안경점에 가서 더 달라고 조르면 된다. 안경닦이 천은 요긴하고 작지만, 늘 가지고 다니기는 힘든 물건이다.

이 물건의 제자리는 어디일까. 써 보니 안경집 속이 제자리다. 쉽게 찾을 수 있고 당연히 있어야 할 부품의 믿음으로 엇갈리지 않는다.

그런데 안경 쓰고 다니는 사람이 평소에 안경집까지 가지고 다닐까. 그럴 리 없다. 안경집은 쓰지 않는 안경을 보관할 때 필요한 물건이다. 필요할 때 쓸 수 없는 물건은 무용지물이다. 고이 모셔진 안경닦이를 쓰기 위해선 집으로 가거나 사무실 서랍을 뒤져야 할 판이다.

주머니에 넣어두면 되지 않느냐고? 천 조각 하나가 주머니 속에 돌아다니는 건 얼마나 신경 쓰이는 일인가.

차 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쓸 때마다 흐려진 렌즈 때문에 짜증낸 적은 없으신지. 차 안 포켓 어디엔가 넣어둔 안경닦이 천은 찾기도 힘들 뿐 아니라 먼지로 뒤덮여 있을 터다. 때가 꼬질꼬질 묻은 닦개를 쓰면서 찜찜해 했던 적이 많다. 이래저래 안경잡이의 짜증은 늘어만 간다.

꼭 필요한 물건은 정작 써야 할 때 찾지 못한다. 세상사의 비밀이다. 꼼꼼한 이들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역설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꼼꼼하게 살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빠진 빈 구석까지 챙기지 못한다는 거다. 주변을 살펴보니 문제에 맞닥뜨려 허둥거리긴 마찬가지란 걸 알았다. 그때그때 닥친 일을 땜질식으로 대처하며 사는 게 합리다. 생명의 바탕인 유전자의 진화처럼 말이다. 기왕이면 잘 대처해야 한다는 전제만 있으면 충분하다.

의료용 알코올 포함돼 세정력 높아

선물로 받은 안경닦이의 이름은 메가네 클리너 후끼 후끼(ふきふき)다. 안경 닦고 칠하는 물건이란 뜻일 테다. 주황색 박스 디자인은 익숙하게 보던 세제 포장용기와 닮았다. 만화체 일러스트가 그려진 박스는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 한눈에 알게 해준다. 안경닦이는 40개로 일회용 비닐 포장에 담겨 필요할 때 바로 뜯어 쓸 수 있게 했다. 휴대의 편의성을 높여 지갑이나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란 것일 게다.

포장지를 뜯으면 미세 부직포 재질에 벽돌 무늬로 엠보싱 처리된 티슈 한 장이 접혀져 있다. 습식으로 향긋한 냄새가 풍긴다. 꺼내 안경렌즈를 닦아 보았다. 평소 쓰던 극세사 천과 다른 세정력까지 갖췄다. 말끔하게 닦이는 효과가 괜찮다. 카메라 렌즈를 오래 다뤄봐서 안다. 단번에 먼지와 오염을 닦아내는 좋은 클리너의 효과를.

비밀은 안경닦이 천에 포함된 이소플로필 알코올이다. 휘발성 높은 고순도 알코올이 갖는 세정력을 주목해야 한다. 한 때 의료용으로 쓰이던 고가의 알코올로 알려져 있다. 상처의 세정과 살균효과가 우수하니 포장지에 표시된 제균 효과는 당연 할지 모른다. 렌즈를 닦는 동안 알코올 성분은 이내 날아가 버린다. 렌즈 주변의 코 받침대와 테까지 닦으면 찝찝했던 느낌이 싹 사라지는 듯하다. 버리기 아까우면 스마트 폰 표면의 얼룩덜룩한 자국을 더 닦으면 된다.

일본에서 이 제품의 인기가 높은 점을 수긍했다. 고바야시란 제약회사가 만드는 물건이다. 제약회사가 만드는 안경닦이란 점에 울컥했다. 우리나라의 제약회사도 이런 디테일까지 발휘해주면 좋을 텐데…. 전국의 안경잡이는 줄 잡아 1000만 명도 넘지 않을까. 이런 시장이란 별것 아니라는 제약사 관계자들의 대범함 때문이라면 실망이다. 세상에 꼭 필요한 물건이라면 만들어주는 게 미덕 아닌가.

아쉽게도 국내에 정식수입된 것 같지 않다. 일본에 다녀올 안경잡이들이라면 주목해야 할 아이템이란 생각이다. 약국이나 공항 면세점을 어슬렁거리다 몇 개 사 오시길. 혼자 쓰지 말고 주변 친구들에게 선물하면 감동하는 이들이 꽤 많지 않을까.

주변 안경잡이 친구들에게 주었더니 반응이 바로 왔다. “와! 끝내주게 닦이네.” 나만의 호들갑이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안경닦이 하나 주고 저녁도 얻어먹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 어렵지 않다. 상대의 불편마저 챙기는 사소한 공감의 행동 말고 뭐 대단한 게 있을꼬. ●

윤광준 :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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