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여름나기 편지] '넌 외롭지 않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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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저 초승달은 누구 눈썹을 닮았나. 넌 외롭지 않니?' 차를 좋아하고 도연명의 시를 좋아해 다연(茶淵)이란 펜네임을 쓰는 친구가 내게 보내온 핸드폰 문자메시지입니다. 무심코 눌러본 문자메시지 속에 친구가 여러 날 전 주말에 보낸 여름안부가 숨어 있었습니다. 보낸 시간은 밤 12시53분이었습니다.

울산 강동바다가 고향인 친구는 고향바다에서 저에게 문자메시지를 날렸을 것입니다. 그 친구는 어머님이 병석에 누워 계셔 주말과 휴일이면 강동바다를 찾아갑니다. 병간호를 하다 어머니 주무시자 밤바다에 나와 눈썹 같은 초승달을 보고, 허허바다 같은 중년의 삶이 외로웠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소주 한 잔을 마셨을 것입니다.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면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어디서 가을이 찾아오고 있을 것입니다. 친구의 휴대폰으로 답신을 보냈습니다. '나도 외롭다. 우리 모두 외로우니 먼 곳에서부터 가을이 오고 있나 보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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