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제학 박사들 불황 속 '찬밥 신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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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란 학문은 경제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미국 경제학자 존 K 갤브레이스의 풍자섞인 이 말조차 요즘에는 적용되기 힘들게 됐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경제학 박사들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최신호(9일자)가 보도했다.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 지원자는 급증한 반면 경제학자 수요는 오히려 줄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명문대 MIT 경제학 박사 과정의 올해 지원자수는 지난해보다 15% 늘었고 뉴욕대(NYU)의 경제학 박사 지원자는 2000~2001년보다 70% 급증한 상태다.

그러나 올해 학위를 받은 경제학 박사들의 구직 시장에는 찬 바람이 불고 있다. 전미경제학회(EAE)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학 박사를 찾는 수요는 전년보다 10% 감소했다. 반면 경제학 박사를 꿈꾸는 대학원생수는 14% 늘어 수급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메릴랜드대 경제학과의 로버트 슈와프 학장은 "지난해에도 매우 어려웠지만 올해는 끔찍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경제학자들이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주로 대학들의 재정난 때문이다. 대다수 경제학 박사들은 대학 교수가 되길 원하지만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대학 측에서는 교수직을 늘리려 하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이 주정부에서 받는 올해 수입은 전년보다 2억4천8백만달러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될 정도다.

대학 외에도 비즈니스 스쿨이나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정부 부처 등에서 일자리가 나기도 하지만 기회가 많지는 않다. 컨설팅 회사와 투자은행의 일자리도 최근 경기 둔화로 줄어들었다.

영국에서는 학생들이 경제학 공부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경영학을 공부하려는 학생이 많은 반면 경제학은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이 때문에 박사 과정에 영국 학생은 많지 않고 대부분 스페인과 프랑스 등에서 온 유학생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학부 과정에서도 경제학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지고 있어 성적이 우수한 고등학생들의 경제학과 지원도 급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저임금에 교수.학생 비율이 악화하고 있는 데다 문서작업까지 과중하다는 점 때문에 유능한 영국인들이 경제학자의 길을 외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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