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임종룡의 고독한 전쟁, 응원한다

중앙일보

입력 2017.03.23 17:34

업데이트 2017.03.26 11:04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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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대우조선해양의 회생에 총대를 멨다. 23일 금융위는 2조9000억원을 신규 지원하고 2조3000억원을 출자전환하는 회생안을 내놨다. 여러 사람이 "지금 왜, 당신이"라는 질문을 임종룡에게 던지고 있다.

복지부동 깊어지는 공직사회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임종룡은 "오로지 나라 경제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그보다는 "다음 정권에 잘 보이려고? ""한진해운 책임론에서 벗어나려고?"등의 추측이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과연 그런가. 한 길 사람 속을 어찌 알겠나. 그러나 임종룡의 열정과 순수함은 높이 사줄 만하다.

사실상 정부가 사라진 지금, 공직사회 전체가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에 빠졌지만 그는 아니다. 위기의 대우조선을 어쨌든 자기 손으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의심은 의심대로 계속 묻어두자. 다만 대우조선 처리의 방향이 맞기만 한다면 임종룡의 속내야 어땠든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 판단 근거는 회생안의 내용과 임종룡의 행위가 돼야 할 것이다.

임종룡은 최근 식사를 거를 정도로 바빴다. 아침·점심·저녁 일정을 언론과 국회로 채웠다. 22일 논설위원들과의 점심,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며칠 간의 강행군으로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거칠었다. 그래도 그는 1시간여의 회생안 설명을 직접 했다. 옆에 실무 총책임자인 금융위 손병두 상임위원이 있었지만 마이크를 넘기지 않았다.

왜 지금 대우조선을 살려야 하는지. 어떻게 살릴 것인지. 어떤 게 최선인지. 정부가 뭘 고민했는지, 설명했다.'당장 청산하면 최대 59조원의 피해가 생긴다, 실업 대란이 올 것이다, 미래의 먹거리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이다…. ' 이유는 차고 넘쳤다. 구구절절이 맞는 소리다.

자구 계획은 아주 보수적으로 잡았다. 손실은 최대로, 실적·수익은 아주 보수적으로 잡고 2021년 까지 버틸 계획을 마련했다. 계획 자체는 나무랄 게 없어 보인다. 물론 몇 가지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다. 금융위는 자율 협의가 안 되면 프리패키지드(P) 플랜 행을 선택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현실적으로 이게 가능하냐가 관건이다. P플랜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면 임종룡의 '엄포'는 단지 엄포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P플랜은 '워크아웃+법정관리'다. 채권단이 부실 기업에 대한 신규 자금 지원, 채권자 확인 및 동결, 출자 전환 등의 계획을 법원에 미리 제출하면 법원이 이를 승인해 3~4개월 만에 강제적으로 채무를 조정해 회생 가능성을 높이는 제도다. 법에는 있지만 아직 한 번도 실제 적용된 적은 없다. 이달 2일 회생 법원이 출범하면서 대우조선이 첫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열렸다.

대우조선의 P플랜은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조선산업은 일반 제조업과 다르다. 자동차나 TV라면 만든 후 팔면 된다. 브랜드 가치만 유지되면 회생 절차에 들어갔을 때 자금 지원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판로가 확보된다. 매출이 예측 가능해 회생 계획을 세우기도 쉽다. 하지만 조선업은 주문이 먼저다. 주문도 없이 배만 잔뜩 만들어 놓을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판로를 못 찾아 더 빨리 망하게 된다. 수주 확보 방안이 확실하게 제시돼야 한다.

대우조선 P프랜에서 더 시급한 건 기존에 수주받은 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예컨대 해외 선주들의 사전 동의를 못 받으면 선수금환급보증(RG)액을 물어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배값은 계약금을 조금만 내고 나머지 대부분은 잔금으로 치르는 외상 거래다. 선주는 대개 조선회사가 배를 제때 못 만들어줄 것에 대비해 (은행 등) 제 3자에 보증을 요구한다. 이 때 제3자는 대부분 해당 조선회사와 같은 국적의 금융회사다. 대우조선은 약 13조원의 RG를 안고 있다. 선주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최악에는 이 돈을 모두 물어줘야 한다. 대우조선의 회생안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임종룡은 이런 P플랜을 전제로 "강제적인 '채권단·채권자 자율 협의'를 요구했다. 어찌됐건 대우조선을 살리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P플랜이 정상 작동할 수 없다면 채권단·채권자는 자율 협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받을 돈을 주식으로 바꿔줬다가 회사가 망하면 한 푼도 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임종룡은 "P플랜은 그런 점까지 고려해 정교하게 짜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계획이 확정된 게 아니니 그런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다. 짐작은 할 수 있다. 임종룡은 손병두 상임위원을 가리키며 "산업통상자원부의 누구보다 조선업을 더 많이 공부했고 잘 안다"고 했다. 스스로 한진해운을 처리할 때 해양수산부 누구보다 더 공부했다고도 했다. "내 임기 중 대우조선을 처리하고 가자고 했을 때 후배들은 말렸다. 내가 다 책임지마 했더니 '자기는 50일 있다 나가면서 무슨 책임을 어떻게 지냐며 툴툴대더라'고 털어놨다.

임종룡은 주변의 의심에 대해서도 정면 돌파를 택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거래설도 스스로 먼저 꺼냈다. 그는 "내가 (청문회를 피하기 위해) 문재인 전 대표와 만나 차기 정부 출범 전에 대우조선이라는 골치 아픈 건을 해결해주겠다고 했다는 루머까지 있다"며 거래설을 부인했다. 그는 "(문재인 대표가 하지 않겠다고 한) 인력 구조조정도 최대한 하겠다. 주주·채권자·경영·노동자 모두가 공동 책임져야 한다. 어느 한쪽만 빼주거나 봐줘서는 구조조정은 물 건너간다. 그런 구조조정은 없다."고 말했다.

굳이 지금 시점을 택한 이유도 설명했다. "지금 대우조선을 처리하면 청문회 감이란 얘기를 하는 분들이 꽤 있다. 다음 정권에 넘기라면서. 대우조선은 그럴 시간이 없다. 4월 운용 자금도 간등간등하다. 미뤘다가 무너지고 난 뒤엔 회복이 불가능하다. 뻔히 이런 사정을 알면서, 정권 바뀌길 기다리는 게 더 무책임하다. 그게 되레 청문회 감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대우조선 회생안이 제대로 굴러가길 바란다. 지원안이 잘 처리될 지도 알 수 없지만 사실은 지원 이후가 더 중요하다. 자칫 제대로 된 고통 분담이 없다면 국민 혈세로 대우조선 노조만 배를 불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번엔 2년 전처럼 서별관 회의도 없었다. 유일호 경제 부총리,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 누구도 이 어려운 상황에 발을 들이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우조선 처리는 임기가 50일밖에 안 남은 임종룡의 고독한 싸움이 돼 버렸다. 그래서 응원한다. 말처럼, 계획처럼 꼭 이뤄지기를, 이뤄내기를. 그러려면 앞뒤 좌우, 정치적 고려 없이 오로지 시장과 경제만 보고 가야 한다. 아니라면 두고두고 나는 임종룡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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