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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충전소] 이 땅에서 사라졌던 소똥구리, 대학 사육실에서 다시 태어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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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소똥 한 덩이에 모여든 소똥구리가 이렇게 많다니! 수백 마리가 한 덩이의 똥 속에 뒤엉켜 각자 제 몫을 떼어내려고 밀치기도 당기기도 한다. 어떤 녀석은 소똥 무더기의 곁을 긁어내고 어떤 녀석은 마음에 드는 노다지를 캐고자 무더기 밑에 갱도를 판다.”

배연재 교수팀, 50년 만에 복원 #초지 생태계 연구에 주요 지표종 #70년대 방목·목초지 줄며 사라져 #유전자 같은 몽골종 460마리 수입 #짝짓기로 알 낳아 … 수명 2~3년 #말똥 좋아해 제주서 먹이 항공택배 #2년 더 연구한 뒤 자연방사 할 것

세계적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1823~ 1915)는 그의 명저 『파브르 곤충기』에 이렇게 적었다. 소똥을 굴리는 독특한 행동에서 이름이 유래한 소똥구리는 파브르 곤충기 10권 중 제1권 1장과 2장에 걸쳐 등장한다. 그만큼 곤충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관찰해 보고 싶은 존재다.

이 땅에서 사라졌던 소똥구리가 돌아왔다. 1968년 국내에서 서식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지 약 50년 만의 귀향(歸鄕)이다.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배연재 교수팀이 국립생물자원관 지원으로 지난해 여름 소똥구리 복원에 성공했다. 몽골에서 들여온 소똥구리의 번식에 성공했다.

몽골 초원에서 소똥구리가 말똥을 뭉쳐 만든 경단을 굴리고 있다. 멀리는 100m까지 경단을 옮기기도 한다. [사진 고려대 배연재 교수]

몽골 초원에서 소똥구리가 말똥을 뭉쳐 만든 경단을 굴리고 있다. 멀리는 100m까지 경단을 옮기기도 한다. [사진 고려대 배연재 교수]

지난해 6~7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에 있는 고려대 부속농장의 곤충사육실에서 소똥구리 알이 애벌레로, 다시 성충으로 자라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연구원들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옥동자가 태어난 것만큼이나 기뻐했다.

소똥구리

소똥구리

소똥구리과(科) 곤충은 국내에도 33종(種)이 살고 있거나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 소나 말의 배설물을 둥글게 뭉쳐 경단을 만들고 굴려서 그 속에 알을 낳는 종은 소똥구리·왕소똥구리·긴다리소똥구리 등 3종뿐이다. 소똥구리는 몸길이가 7~16㎜이며 광택이 없는 검은색 몸은 오각형에 가깝다. 분류체계상 과(科)는 같으나 속(屬)이 다른 왕소똥구리나 긴다리소똥구리·애기뿔소똥구리 등은 지금도 국내에서 드물게 발견된다. 하지만 대표 격인 소똥구리(Gymnopleurus mopsus)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Ⅱ급으로 지정돼 있을 뿐 이 땅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68년 전북 군산과 경북 안동에서 마지막으로 채집된 표본이 국립농업과학원에 남아 있다.

결국 소똥구리는 ‘지역 절멸(絶滅)’ 종으로 분류됐다. 지구상 다른 곳엔 살지만 한국에선 완전히 사라진 종을 말한다. 왕소똥구리와 긴다리소똥구리도 심각한 수준으로 감소한 ‘위급종’이다. 이들은 과거 남한 전역에 걸쳐 분포했다. 70년대부터 가축 방목이 줄고 목초지도 감소하면서 사라졌다. 가축의 진드기를 제거하기 위해 구충제를 사용한 것도 원인이었다.

배연재 교수는 “멸종위기종이란 기본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진 것들이다. 모든 종을 복원할 수는 없지만 소똥구리는 동물 배설물 활용으로 초지 생태계의 물질순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표종이어서 복원 필요성이 높다”고 말했다.

소똥구리는 인류 진화, 역사와도 관련 깊어 옛 우화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만큼 소똥구리의 복원은 문화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오홍식 제주대(과학교육학부) 교수는 “방목지가 남아 있는 제주도에서 소똥구리 복원에 성공해 가족 단위의 생태관광 테마로 자리 잡는다면 세계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똥구리는 유럽과 중앙아시아·동북아시아에 걸쳐 있다. 한반도와 제주도에는 있지만 일본에는 없다. 소똥구리 서식지는 옛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국내에서 사라진 소똥구리를 복원하려면 해외에서 들여와 증식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연구팀은 우선 해외에 서식하는 종이 우리 토종 소똥구리와 같은 종인지 확인했다. 이를 위해 국내외 표본의 외부 형태와 생식기를 비교했다. 또 국내 박물관에 남아 있는 전체 30여 표본 중 2개에서 유전자(DNA)를 채취해 몽골·유럽 것과 비교했다. 그 결과 모두가 같은 종인 것으로 판명됐다.

다음 단계로 연구팀은 소똥구리 생태와 서식 조건을 파악하기 위해 몽골 초원을 누볐다. 소똥구리는 가축을 따라 이동하는데, 멀리서부터 소똥·말똥 냄새를 맡고 날아온다. 연구팀이 소똥구리에 표시를 한 다음 풀어주고 무인항공기로 추적한 결과, 소똥구리는 가축을 따라 2시간 동안 평균 200m 정도 이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똥구리과 곤충 중에서 밤에 경단을 굴리는 종도 있지만 소똥구리는 낮 시간에만 경단을 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똥구리는 경쟁자들로부터 빨리 벗어나기 위해 직선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2012년 스웨덴 룬트대학의 마리 다케 교수는 밤에 경단을 굴리는 왕소똥구리속(屬)의 한 종류는 은하수의 위치를 이용해 방향을 잡는다고 보고했다. 또 낮에 경단을 굴리는 종류는 태양이 하늘 중간에 위치하는 한낮에는 방향을 잘 잡지 못하고 태양이 지평선 부근에 있을 때는 실수 없이 방향을 잘 잡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의 임창섭 연구원은 “소똥구리가 보통 20~30분 걸려 말똥을 뭉쳐 지름 20㎜ 정도 경단을 만들고 이들 경단을 묻기에 적당한 장소까지 30분에서 1시간 정도 굴린다. 100m 이상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적당한 곳에 도착하면 경단 아래쪽을 파서 경단이 구멍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땅굴은 ‘ㄴ자’ 모양이다. 경단에 알을 낳은 소똥구리는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경단을 굴리는 과정에서 약삭빠른 놈들이 와서 경단을 가로채기도 한다. 암수 두 마리가 굴리고 있다면 암컷을 밀어내고 다른 암컷이 들어오기도 하고, 수컷이 다른 수컷을 밀어내기도 한다.

연구팀이 살아 있는 소똥구리를 국내로 수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축과 관련이 있어 구제역 검역을 통과해야 했다. 멸종위기종이라 까다로운 수출입 절차도 거쳐야 했다. 배 교수는 “연구도 연구지만 행정 절차 때문에 힘들었다”며 “몽골 정부에 7가지 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고 말했다. 도입된 소똥구리는 한 마리 한 마리 환경부에서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연구팀은 2015~2016년 몽골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소똥구리 460마리를 수입했다. 현재 64마리가 살아남아 동면 중이다. 특히 이 중 5마리는 2015년 도입된 소똥구리가 짝짓기로 낳은 알이 자라 성충이 된 것이다.

연구팀은 국내 사육을 위해 가로 4m, 세로 4m, 높이 2m 크기 울타리를 여러 개 만들고 흙모래로 채웠다. 임 연구원은 “소똥구리 사육을 위해 2주일에 한 번 제주도 목장에서 ‘신선한’ 말똥을 5㎏씩 가져왔다”고 말했다. 소똥보다 말똥을 더 좋아하는 바람에 항공 택배까지 한 것이다.

사육을 통해 소똥구리가 9~10월 동면에 들어가 4월 중순께 깨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면을 하기 때문에 수명이 2~3년이란 것도 파악했다.

좋아하는 먹이·온도·습도 등 사육 조건을 파악했으니 이젠 더 많이 번식시켜 자연에 방사해 복원하는 일이 남았다. 연구팀은 현장 조사를 거쳐 복원 대상지로 전남 신안군 자은도, 충남 태안군 신두리 해안사구 등을 후보지로 골랐다. 하지만 신두리 해안사구의 경우 태안해안국립공원 지역이라 가축을 방목하는 데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제주도가 복원 대상지로 떠올랐다.

오홍식 교수는 “제주도 중산간지대에는 진드기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방목하는 목장이 남아 있어 소똥구리 복원지로 적당하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앞으로 2년 정도 더 연구가 진행되면 소똥구리를 자연에 방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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