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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중병 든 대우조선, 일단 살리기로 했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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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대우조선해양 등과 거래하는 협력업체가 들어선 경남 거제 오비산업단지. 조선업 불황으로 일거리가 없어 크레인은 멈춰 서 있고 작업 인력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23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 방안을 밝힐 예정이다. [중앙포토]

대우조선해양 등과 거래하는 협력업체가 들어선 경남 거제 오비산업단지. 조선업 불황으로 일거리가 없어 크레인은 멈춰 서 있고 작업 인력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23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 방안을 밝힐 예정이다. [중앙포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불씨 여전한 추가 자금 지원 #파산 땐 파급력 한진보다 커 #금융위 “정리 비용이 더 많아” #워크아웃 들어갈 경우엔 #10조대 선수금보증 걸림돌 #“현정부가 말 바꿨다” 지적에 #“차기 정부 기다리면 병 커져”

유동성 위기에 처한 대우조선해양의 지원 방안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공식 입장은 이렇다. 시나리오는 다섯 가지다. ▶조건 없는 신규자금 지원 ▶채무재조정을 전제로 한 자금 지원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결합한 ‘프리 패키지드 플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다. 대우조선을 살리느냐, 죽이느냐까지 포함한 모든 방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가 대우조선을 죽이는 안을 택할 거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대우조선이 커도 너무 크기 때문이다. 대마불사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로선 대우조선을 구하는 데 드는 돈보다 정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크다 ”고 말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학과 교수도 “대우조선은 파산처리된 한진해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기업”이라며 “조선 업황이 이미 바닥을 찍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버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워크아웃도 쉽지 않다. 은행권이 그동안 발급해 준 10조원대 선수금환급보증(RG)을 물어주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선주가 조선사에 배 건조를 발주할 때는 건조 비용의 일부를 선수금으로 지불한다. 그러면서 금융회사의 RG보험에 가입한다. RG보험은 조선사가 주문 받은 배를 건조해 넘기지 못하면 금융회사가 선주에게 선수금을 물어주기로 보증하는 상품이다. 워크아웃에 들어갈 경우 선주들의 RG콜(선수금환급 요청)이 이어질 수 있다.

익명을 원한 조선업 담당 애널리스트는 “해운 업황이 바닥이기 때문에 (워크아웃 시) 상당수 선주들이 선수금을 돌려받으려 할 것”이라며 “이 경우 수출입은행이 휘청거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 RG 6조6000억원어치를 보유한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11.15%)은 이미 은행권 최하위다. 그래서 유력한 게 채무재조정을 전제로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안이다. 이 경우 만기가 다가온 회사채는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원금 상환유예를 추진하게 된다. 국책은행뿐 아니라 시중은행에도 출자전환과 향후 신규수주 시 RG 발급을 요구할 방침이다. 이해당사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다. 채무재조정에 대한 우려로 15일 대우조선의 4월 만기 회사채 거래가격은 전날보다 17.8% 떨어진 7640원을 기록했다.

자료:금융투자협회·금감원

자료:금융투자협회·금감원

정부는 2015년 10월 서별관회의에서 4조2000억원 지원을 결정한 이후 줄곧 “추가 신규자금 지원은 없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이 현재 건조 중인 선박은 110척이다. 몇 년치 먹거리는 확보해 놨기 때문에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신규 수주가 어느 정도만 받쳐줘도 유동성엔 문제없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조선업 불황의 골이 예상보다 훨씬 깊어지면서 선박 발주의 씨가 마르다시피 됐다. 당초 정부와 대우조선은 지난해 수주액 목표치를 110억 달러로 잡았지만 크게 밑돈 15억 달러에 그쳤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1조608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2조8000억원의 자본확충 덕에 간신히 자본잠식은 면했지만 지난해 말 기준 자본금은 3329억원으로 떨어졌다.

자료:금융투자협회·금감원

자료:금융투자협회·금감원

정부의 애매한 태도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휘청하다는 소문 때문에 지난해 선박 발주를 준비하다 취소한 선주들이 있다”며 “정부가 좀 더 일찍 강력한 채무재조정안을 만들어서 ‘대우조선은 적어도 몇 년은 끄떡없다’는 신호를 줬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제 와서 말을 바꾸고 추가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데 대한 비판 여론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대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현 정부가 대규모 자금 지원을 결정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우조선해양 처리라는 큰 문제는 두 달 뒤 새로 들어설 경제팀의 부총리가 나서서 백지상태에서 논의할 일”이라며 “금융위는 4월 회사채 상환만 막고 공을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중병임에 틀림없고 처방도 뻔한데 병원 가는 걸 두 달 미뤄봤자 병만 더 키울 뿐”이라며 “구조조정을 해 온 금융위가 신속하게 마무리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23일 지원방안을 확정한 뒤 정치권을 상대로 설득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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