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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과 관용의 네덜란드, 폐쇄·배타적 나라 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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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호 15면

[글로벌 뉴스토리아] 유럽 포퓰리즘의 반란 어디까지

1 네덜란드 극우 자유당 대표인 헤이르트 빌더르스(왼쪽)가 지난 8일 브레다에서 지지자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응하고 있다.

1 네덜란드 극우 자유당 대표인 헤이르트 빌더르스(왼쪽)가 지난 8일 브레다에서 지지자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응하고 있다.

2 풍차를 배경으로 서있는 네덜란드 총선(3월 15일) 안내판. [AP=뉴시스]

2 풍차를 배경으로 서있는 네덜란드 총선(3월 15일) 안내판. [AP=뉴시스]

‘개방과 관용의 나라’ 네덜란드가 15일 총선을 앞두고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폐쇄적·배타적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자유당(PVV)의 돌풍 때문이다.

15일 총선 극우 자유당 돌풍 주목 #지난달 말까진 여론조사서 제1당 #선거 앞두고 다소 약세로 돌아서 #브렉시트·미 대선 이후 첫 서방 선거 #?기성 정치에 반기? 반복될까 주목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는 넥시트(Nexit·네덜란드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반이슬람주의·반이민주의를 내세운다. 자국 내 모스크(이슬람사원)의 폐쇄와 코란(이슬람 경전) 판매 금지, 국경 봉쇄 등을 공약했다. 문제는 이런 정당이 2월 말 여론조사에선 150석 가운데 31~37석을 얻어 제1당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는 점이다. 3월에 접어들며 지지율이 다소 하락해 예상 의석은 21~25석으로 떨어졌다.

마르크 뤼터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집권당인 자유민주국민당(VVD)이 24~28석으로 제1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NL타임스를 비롯한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2012년 총선에서 41석을 얻은 데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세다. 연정 파트너인 중도 좌파 노동당(PvdA)은 의석이 반 토막 나 10석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이번 네덜란드 총선은 지난해 6월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과 11월의 미국 대통령선거 이후 서구 국가에서 처음 치러지는 선거다. 따라서 ‘기성 정치인에 대한 포퓰리즘의 반란’이 올해도 이어질지를 가늠할 수 있는 행사다. 올해 유럽에서는 4~5월 프랑스 대선과 9월 독일 총선 등 굵직한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EU의 운명을 가를 한판일 수 있다.

네덜란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2017년 명목 금액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6830달러로 세계 13위에 이르는 부자 나라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부유하고 행복한 네덜란드 국민이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를 갈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성 정치의 무력함에 분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유민주국민당 재집권 여부와 상관없이 네덜란드에선 기성 정당의 퇴조와 포퓰리즘의 부상이 도도하다는 점이다. FT 분석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네덜란드 의회는 자유민주국민당·노동당·사회당 등 3개 주요 정당이 지배해 왔다. 1986년엔 3대 정당이 전체 의석의 89%를 차지했지만 2012년 총선에선 60%로 떨어졌고 이번 선거에선 42%까지 하락할 전망이다. 기존 정당이 쇠퇴하고 신생 군소 정당이 넘치는 것도 이번 선거의 특징이다. 실제로 28개의 정당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대중의 신뢰와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메이저 정당은 사라지고 정치의 철저한 파편화 경향이 도도한 흐름이 될 전망이다.

자유당의 거품이 다소나마 꺼지고 있는 현상은 네덜란드 특유의 개방과 관용의 역사가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신교도가 다수이지만 가톨릭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던 네덜란드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독립했다.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 추방된 유대인과 프랑스에서 쫓겨난 신교도 위그노, 영국의 청교도 등 유럽의 종교 난민을 받아들이는 개방정책을 펼쳤다. 이를 통해 이들의 자본과 기술을 흡수하면서 번영의 터전을 닦았다. 이미 17세기에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보험사 등을 만들면서 글로벌 무역으로 해상제국을 이뤘다. 렘브란트·페르메이르 등 네덜란드 화가들은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중산층의 삶을 생생하게 그렸다. 인문학자 에라스뮈스(1466~1536)는 네덜란드식 관용에 사상적 배경을 제공했다. 톨릭 사제였지만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개방적인 ‘종교 관용’을 사실상 유럽 최초로 주장했다. 기독교적 숙명론 대신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해 국민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관용을 바탕으로 하는 개방성은 번영의 원동력이 됐다. 현재도 유럽 최대 물류기지인 로테르담 시장이 15세 때 모로코에서 이주한 아메드 아부탈레브일 정도로 개방성이 남다르다. 아부탈레브는 유럽 주요 도시의 유일한 이민자 시장이며 무슬림 시장이다.

중세 후 ‘ 내버려 둬라’ 관용문화 발달

네덜란드는 중세 이후 ‘헤도헌(gedogen·내버려 둬라)’이라는 독특한 관용문화를 발달시켜 왔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금지보다 통제가 낫다’란 실용정신이다. 세계 최초 기록이 수두룩한 이유다. 일찍이 1811년 동성애 허용법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유럽 전역에서 박해받던 다양한 인재를 이 나라로 이끄는 요인이 됐다. 2001년 세계 최초로 동성애 결혼도 합법화했다.

1976년 중독성과 부작용이 비교적 약한 대마를 세계 최초로 허용했다. 처음엔 세계가 경악했지만 지금은 다른 마약의 확산을 막는 지혜로 평가받는다. 이를 범죄가 아닌 공중위생 문제로 관리한 결과 1983~2010년 강력한 마약인 헤로인 사용이 30%나 감소했다.

낙태도 1984년 세계 최초로 합법화했다. 1988년에는 심지어 성매매를 구역을 정해 양성화했으며, 합법적 직업으로 인정해 세금을 징수한 결과 음성적 확산을 방지했다는 평가다. 2002년에는 안락사를 세계 최초로 합법화했다. 대신 호스피스 병동을 충분히 마련하고 관련 서비스 수준을 높여 마지막 길을 존엄하게 갈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다.

낙태 첫 합법화, 성매매도 구역 정해 양성화

네덜란드는 사실 내부적으로는 종교·이념·사회계층 등에 따라 개신교도·가톨릭신자·사회주의자·보수주의자·자유주의자로 분열됐다. 집단에 따라 서로 정당·신문·방송·대학·은행·유스클럽·스포츠클럽, 심지어 구호단체까지 별도로 이용한다. 노동조합과 경영자단체까지 따로다. 나치 점령기간 중 레지스탕스 운동도 별도로 벌였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은 서로 융합하지 않음을 탓하지 않고 서로 싸우지 않음을 자랑으로 삼는다. 서로 부딪힐 일을 줄여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남의 일에 간섭하기 싫어하는 전통을 만들어 왔다. 이에 따라 종교와 이념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맞상대하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만 접촉하는 전통이 있다.

이렇게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는 조화로운 사회를 사회학자들은 병립화(pillarisation)로 부른다. 서 있는 기둥처럼 서로 부딪히지 않고 천장에서만 서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정부가 천장 역할을 한다. 이렇게 네덜란드 사회는 서로 융합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는 용광로라기보다 서로 개성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샐러드 같은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인정하며 차이 속에서 공존하려면 사회적 관용과 정치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런 사회구조 때문에 네덜란드에선 한 번도 특정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적이 없다. 정치는 연정이 기본이다. 카리스마적인 리더십 대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정치가 발달했다. 그런 가운데 경제적으로는 번영하고 사회적으로는 열려 있다.
이런 나라에서 과연 개방과 관용의 정신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지 전 세계가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네덜란드 총선이다.

※글로벌 뉴스토리아는 지구촌 뉴스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살펴 알기 쉬운 스토리로 되새김질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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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논설위원

chae.inta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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