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사들 학술회의 축소 압력 의혹에 중립기구 만들어 진상조사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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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의 학술행사를 대법원 간부가 축소하도록 지시하고, 이에 반발하는 법관을 당초 발령과 달리 인사 조처했다는 일각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대법원이 9일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대법원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청사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간단회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구를 만들어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사실 아니다”는 공식해명에도 파장 계속되자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결정

 이번 사태는 400여명의 판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법원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지난달 9일부터 전국 법관을 상대로 ‘사법독립과 법관인사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촉발됐다. 설문조사 내용은 이달 25일 학술행사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일부 언론에서 최근 법원행정처 임종헌 차장이 연구회 소속으로 지난달 법원 정기인사에서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난 이모 판사를 만나 이 학술행사를 축소하도록 부당하게 지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해당 판사가 반발해 사의를 표명했고 행정처는 이 판사를 원소속 법원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 차장은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을 표했다. 이 판사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기자들에게 아무 답변도 주지 않았다. 이러는 사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요구가 올라오고, 서울동부지법에서는 부장판사 회의를 다음주 월요일에 열기로 하는 등 파장이 계속됐다.
 고영한 법원행정차장이 나서서 7일 법원내부통신망에 “(대법원은)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해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공식입장을 냈음에도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 판사는 다음달 “저의 인사발령 등에 대한 기사들은 모두 저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도된 것”이라며 “제가 경험한 부분에 대하여는 어떤 방식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옳은지 고심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애초 예정됐던 전국법원장 간담회에서 이 문제가 의제로 올랐고, 진상조사를 위한 중립기구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정확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혹이 확산해 최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명확히 규명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10일 간담회까지 거친 뒤 기구 구성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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