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공안검사 인사와 독일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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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두말할 것 없이 검찰의 존재 이유는 국체의 수호와 거악(巨惡)의 척결로 요약된다. 즉 공산주의나 극단주의 등 사악한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사회를 병들어 썩게 하는 중요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우선 남북 간 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우리 공안검찰은 북한의 이중성, 즉 이념적으로 극복의 대상이면서 민족적 동질성의 면에서 공동체적 구성원이라는 성격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공안검찰상을 정립해 더욱 활발히 움직여야 할 때이지 결코 그 기능을 축소할 때가 아니다. 정부의 통일 노력이 알찬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다 튼튼한 안보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안보 범죄와 관련해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통일 전후의 동.서독 관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선 통일 이전까지 동독은 서독의 안전을 크게 위협했던 적군파(RAF) 등 극좌조직들을 배후에서 은밀히 지원하고 있었다. 특히 1972년 동.서독 간의 기본조약 체결을 통한 긴장완화정책 이후에는 오히려 이러한 정책을 역이용해 서독에 대한 간첩활동을 강화했다. 74년 브란트 전 수상의 개인비서인 기욤의 간첩사건은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 1만여 명 이상의 동독 간첩이 서독에서 암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통일 이후 밝혀진 동독 국가보위부(슈타지)의 간첩사건은 5000여 건에 달했고 서독 내에서 암약한 비공식 정보원만 해도 수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서독은 기본조약 체결 전후 일관되게 국가안보 관련 범죄에 대해서만은 엄정하게 대처해 왔다. 결코 공안부서를 축소하거나 공안기능을 약화시키지 않았고 공안 관련 처벌 법규의 규범력을 현재까지 강력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통일 이전인 89년 필자가 서독 연방검찰청을 방문할 때만 해도 연방검찰청은 총 4개의 부서 가운데 2개의 부서, 즉 제2부(국내안보)와 제3부(국외안보)를 핵심 부서로 두고 있었다. 말하자면 연방검찰청 전체가 하나의 공안부서라고 할 정도로 공안 기능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이번 검찰인사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일부 언론의 우려대로 과연 어떤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런 우려가 만약 사실이라면 그것 역시 문제다.

정부가 그동안 주요 정치적 사건에서 국민에게 보여준 정치적 중립의지(필자는 무엇보다 그것을 이 정부의 업적으로 높게 평가한다)가 이번의 검찰인사로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더 두려운 것은 브레징카 교수의 진단처럼 공안검찰의 부재 또는 약화 현상이 가져올 우리의 체제 수호에 대한 불안감이다.

"나치 독재가 소름 끼치도록 권력을 오용한 것이 구실이 되어 내외의 적과 맞서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과거의 극복'이란 표어 아래) 정치적.이데올로기적.도덕적으로 거의 무장해제를 당하다시피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좌파(新左派)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착수했던 것이다."(볼프강 브레징카.'신좌파의 교육학').

과거의 공안검찰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편향된 시각 때문에 '과거의 극복'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가 보다 위험한 상황을 맞아서는 결코 안 된다는 사실을 이번 검찰인사를 보면서 거듭 강조하고 싶다.

김원치 변호사·전 대검형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