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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홍혜경 그리운 조국을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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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데뷔 20년째를 맞는 소프라노 홍혜경(洪慧卿.44.사진)씨는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성악가다.

1982년 메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이듬해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비올레타 역을 제의받았으나 정중히 사양한 후 84년 모차르트의 '티토 왕의 자비'중 세르빌리아 역으로 데뷔했다.

메트에서 19개의 배역에 150여회 출연해왔지만 세계 굴지의 오페라 극장으로부터 쇄도하는 출연 제의도 거절했다. 88년 그를 무척이나 아끼는 메트의 예술감독 제임스 러바인이 지휘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 초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리허설과 공연을 하자면 적어도 한 달 이상 집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데뷔도 96년으로 늦어졌다. 그는 무대에 서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가정에 소홀하는 법이 없다. 이덕분에 무리한 스케줄을 잡지 않아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24세 때 뉴욕 한인교회 성가대에서 만난 재미 변호사 한석종씨와 결혼, 대학에 다니는 두 딸(20세와 18세)과 막내 아들(9세)를 둔 그는 아내와 어머니, 오페라 가수 등 1인 3역을 모두 훌륭히 해내고 있다.

워낙 가정에 충실하다 보니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다른 한국인 연주자들에 비해 고국 무대가 뜸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국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기회가 있을 때마나 외국서도 한국 가곡을 불렀다. 2001년 서울 독창회에서 홍씨가 앙코르로 들려준 김동진의 가곡 '내 마음'과 '수선화'를 아직도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홍혜경씨가 뜨거운 조국애와 고국 팬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첫 한국 가곡집을 냈다. 세계 굴지의 음반사인 EMI 클래식에서 나온 '코리안 송' 앨범은 지난 3월 파리 퐁피두센터 내 스트라빈스키홀에서 김덕기(서울대 교수) 지휘의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다. '보리밭' '수선화' '가고파' '그대 있음에' '떠나가는 배' 등 애창 가곡들이 수록됐다.

한결같이 조국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절절함과 애틋함이 깃들어 있는 곡들이다. 16곡의 한국 가곡을 홍씨가 직접 선곡했고, 김희조.장일남 등 기존의 편곡자 외에 조상욱.서광태씨가 새로 편곡한 9곡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최근 30년 동안 발표된 신작 가곡 중 박경규의 '나의 백두산아'가 유일하게 포함된 것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5분 내내 별 특징 없는 고음의 장식 선율의 반복으로 일관해 다소 단조롭기 때문이다.

홍씨는 음반 출시와 함께 오는 9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1일 울산 현대예술관, 24일 대구 시민회관, 27일 부산 문화회관에서 순회 독창회를 한다. 푸치니.베르디.레하르.모차르트.비제.구노 등의 오페라 아리아와 한국 가곡을 들려준다. 서울 공연은 김덕기 지휘의 코리안심포니, 지방 공연은 피아니스트 브라이언 제거가 반주를 맡는다. 02-720-6633.

예원중에서 김옥자 교수를 사사한 홍씨는 15세때 뉴욕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로 유학,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성악가다. 동양인 여성 성악가들이 쉽게 유혹을 받는 나비 부인 역의 덫에 걸리지 않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넓혀오는데 성공했다. 홍씨는 내년 5월 워싱턴 오페라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에 도전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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