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교기밀 정략적 이용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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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기밀 사항이 국회의원에 의해 폭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2일 국회정보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04년 17대 국회 개원 후 모두 31건에 달한다.

하지만 이번 최 의원 건은 과거의 폭로들과 성격이 다르다. 과거의 폭로들은 국방부.통일원 등 정부 부처로부터 대면보고를 받거나 합법적으로 인지한 내용을 공개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NSC 회의록과 보고서 전체가 통째로 유출돼 폭로됐다. 청와대 측은 이를 공식적으로 건네준 적이 없다고 하니 문건 관리가 제대로 안 된 것이 확실하다. 청와대는 뒤늦게 문건 유출과 관련해 내부 조사 및 경위를 파악하겠다는 입장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왜 외교적 기밀 내용이 담겨 있는 문건이 연일 폭로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한.미 간에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은 한국의 상황을 감안할 때 흡족하지는 않지만 그만 하면 양국의 입장이 균형적으로 반영됐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렇게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을 '폭로'라는 형식을 통해 문제화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전략적 유연성'에 불만을 품은 강경 좌파세력의 뒤집기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내부 권력투쟁에 대한 의구심까지 내놓는다. 통일부 장관 내정자인 이종석 당시 NSC 차장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세력들 간의 노선투쟁이란 말도 나온다. 만일 국익과 민감한 외교.안보적 사안마저 청와대 내 강.온파 간 권력 갈등을 위해 활용했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다. 이 정부 출범 후 숱하게 반복된 외교안보라인의 불협화음과 노선 갈등이 이런 식으로 표출되는 데는 정권의 책임이 크다. 이 점에 대해 청와대는 국민의 불안과 의구심을 해소시켜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