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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 다른 박수 소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1호 29면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8.5px Helvetica}[인연·음연] 여러 모로 의미가 남달랐던 사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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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건대 나는 어려서부터 박수 소리 안에서 자란 ‘쾌락천사’였다.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는 무엇을 하든 박수 소리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별로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노래를 한 소절 부르거나 성경을 몇 구절 외었을 뿐이다. 아마 가족들은 내가 응원을 받을수록 더 잘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은 방송국에서 주관하는 어린이 노래 부르기 대회였다. 당시 5살이었던 나는 찬송가를 불렀다. 상품은 나무 블록 장난감. 나중에 보니 상자에는 ‘1962년 제작 상품’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사실 당시에는 잘 몰랐다. 글을 읽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그보다는 내용물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들어있던 12개의 나무 블록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장난감을 손에서 놓을 줄 몰랐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블록을 쌓았다가 무너뜨리고 다시 쌓기를 반복했다. 블록을 쌓을 때마다 옆면에 나타나는 다른 그림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과일 그림. 그 당시엔 보기 힘들었던 낯선 과일의 모습을 보기 위해 나는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원하는 그림을 단번에 찾을 수 있게 됐다. 가족들은 내가 그림을 완성할 때마다 손뼉을 치며 “넌 정말 똑똑하다”고 칭찬했지만 아마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내가 그 과일이 먹고 싶어서 피나는 연습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한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박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수는 그 자체로 믿음과 긍정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인은 서양인과 달리 교육방식에 있어서도 별로 표현을 하지 않는다. 특히 아버지들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아이가 귀엽고 영리한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너는 정말 뛰어나다” “나는 네가 무척 자랑스럽다” 같은 칭찬을 좀처럼 듣기 힘든 것이다.

다행히 엄마는 그런 나를 잘 이해해줬다. 그 역시 전형적으로 보수적인 동양인이어서 별다른 칭찬은 하지 않았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박수로 응원을 보냈다. 특히 피아노 연주가 끝날 때면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그것이 꾸준한 연습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이는 내가 연예계에 입문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긴장을 피할 수 없었지만, 박수 소리를 들으며 무대에서 내려오면 쿵쾅거리던 심장 박동이 잦아들었다. 내게는 천연 진정제였던 셈이다.

이러한 ‘약물’은 1년에 한 번 정도는 맞아줘야 한다. 얼마 전에도 다시금 그 효능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마침 음력 설이 막 지나고 ‘개강’을 준비해야 할 때였다. 내게 ‘방학’은 지난해 6월 병상에 눕게 되면서 일을 하지 못한 시간을 의미한다. 지난 주부터 다시 일을 시작한 나는 가장 먼저 중화총상회 이사회에 참석했다. 본부가 있는 빌딩 앞에 차가 서고, 다시 그 익숙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감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회의실로 들어가니 총회장이 모두에게 나의 복귀를 정식으로 선포했다. 그 자리에 모인 수십 명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데, 그동안 들었던 박수 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격려 뿐만 아니라 위로와 기대가 한 데 모여 마치 따스한 기운이 내 몸 속 세포 하나 하나를 모두 감싸안아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생의 다른 계단에 올라선 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좋아하는 일이 생기가 충만하게 만들어줄 수 있음을 이미 경험한 터였다. 산문집『인연ㆍ음연(因緣ㆍ音緣)』도 무사히 출간돼 정식 작가로 승격도 됐겠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날이었다. 신간 홍보를 위해 TVㆍ신문ㆍ잡지 인터뷰를 하다 보니 음반이 나왔을 때와 비슷했다. 다만 초점이 글과 그림에 맞춰져 있으니 매번 노래를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투병 사실을 공개하고 난 후엔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화장을 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독자들도 아름답게 치장한 스타가 아닌 내 진짜 모습을 보길 원하리라.

말레이시아 MPH 서점에서 열린 사인회는 특히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팬 분들이 미리 와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일에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찬송가 ‘시편 23편’을 불렀다. 노래는 안 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냐고? 이건 공연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신에 대한 감사다. 다시금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5살 때 이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처음 부른 이후 늘 박수 속에 살아왔지만 이번엔 그 때와 또 달랐다. 여기에는 사랑과 애정이 넘쳐났다.

천추샤(陳秋霞ㆍ진추하)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
onesummernight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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