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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균형의 왕 #15

중앙일보

입력

<이별 노래 이야기>

발라드를 좋아한다. 난 래퍼는 아니지만, 진실만을 말하니 믿어라. 물론 내가 도무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나의 패션과 외모 그 어디에서 발라드를 연상할 수 있겠나. 할 말이 없다. 죄송하다. 이주일은 못생겨서 죄송했지만 난 발라드를 연상할 수 없는 외모라서 죄송하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내가 파 놓은 함정이다.

실제로 지하철을 탈 때마다 난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일단 힙합 옷을 입고 지하철에 탄다.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다. 자리에 앉는다. 그리곤 마주 앉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쳐다본다. 그의 눈을 보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넌 지금 내 모습을 보고 내가 힙합을 듣고 있는 줄 알겠지? 아닌데? 아닌걸? 난 지금 윤종신 듣고 있는데? 발라든데? 넌 왜 늘 고정관념으로 생각하는 거지? 넌 왜 늘 한 가지 관점으로밖에 보지 못하지? 넌 왜 꽉 막힌 사람이 된 거지? 넌 왜 내 함정에 걸려서 허우적대고 있지?” 물론 앞사람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한테 관심도 없다. 하지만 내가 이겼다. 나는 날 사랑한다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발라드라기보다는 이별 노래를 좋아한다. 여기에는 이별의 정확한 상황을 담은 노래는 물론이고 짝사랑이나 그리움도 포함된다. 저주는 포함되지 않는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이별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내가 아꼈던 이별 노래들이 있다. 아마 그 노래들이 없었다면 이별의 순간마다 난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이런 순간이 있었다. 헤어진 지 몇 년 지난 사람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그녀는 대뜸 잘 지내냐고 물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식상한 인사말만을 듣자마자 바로 감을 잡았다. 결혼이구나. 이건 결혼이야. 물론 정답이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아, 아니지. 슬픈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았지. 그냥, 그냥 예감이라고 해두자.

'전 여자친구'라는 사람들은 왜 새벽에 뜬금없이 연락해서 결혼 소식을 전하는 걸까. 뭘 바라는 걸까. 그 말을 갑자기 들은 내가 너를 축하해줄 만큼 우리의 끝은 좋았던 걸까. 넌 날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난 너를 마냥 애틋하거나 좋은 추억으로만 기억하진 않는데. 왜 넌 예전이나 지금이나 너의 이기적 낭만에만 신경 쓰는 걸까. 내가 휘성은 아니지만 넌 내가 결혼까지 생각했던 유일한 여자였지. 솔직히 말하면 너와의 이별이 내 인생에 안긴 후폭풍은 어마어마했고, 지금의 내 성격이나 태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짐작을 가장한 확신을 하고 있지. 하지만 지금은 그 꿈에서 깨어난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너의 행복을 빌고 싶진 않아. 하지만 너의 앞길에 특별한 불운 같은 건 없길 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정신 차리자. 이건 남들도 보는 글이잖아. 균형의 왕인만큼 균형감각을 늘 유지하도록 해. 어쨌든 나는 이날 윤종신의 ‘너에게 간다’를 다시 10번 들었다. 21세기 가요를 통틀어 최고의 팝 중 하나인 이 노래는 윤종신의 커리어를 대표할만한 노래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윤종신의 팬이라면 모두 이 노래를 사랑한다. 실제로 윤종신이 콘서트 선곡을 위해 실시한 설문에서 이 노래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라는 뜻이었다.

‘너에게 간다’에서 남자는 말 그대로 너에게 간다. 헤어진 연인의 전화를 받고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약속한 장소에 이르러 문을 여는 순간, 노래는 끝난다. 이게 좋았다. 문을 열자마자 끝내는 것이 너무 곱하기 백 좋았다. 완벽한 여운으로 장식한 완전한 결말이었다. ‘4월 이야기’도 그래서 좋아했던 영화다. 좋아하던 선배와 마침내 사랑을 시작하려는 순간 냉큼 끝내버리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난 알지 못한다. ‘너에게 간다’나 ‘4월 이야기’나 남겨진 이야기는 나의 몫이었다. 오호라, 내가 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다 이거지. 우쭐우쭐. 제가 한번 이야기를 잘 완성해보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만난 전 여자친구는 청첩장을 손에 쥐어 주었고요, 좋아하던 선배는 사실 이미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왜냐구요? 내가 불행하면 남도 불행해야 해.

아무튼, 조규찬의 ‘C.F'도 좋아하는 이별 노래다. ‘캠퍼스 프렌드’라는 제목답게 이 노래는 짝사랑을 앓는 모든 대학생 남자들의 주제가라고 할 수 있다. 선배 놈들 개수작에 넘어가면 안 돼. 널 지켜줄 사람은 나야. 이 노래에서 조규찬은 사랑의 감정을 수학으로 재단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내가 널 다섯 번 볼 동안 너의 남자친구는 아마 겨우 한두 번쯤 만나는 게 고작일 테고’가 바로 그 문제의 구절이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도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다섯 번 만나면 다섯 배 사랑하고, 한 번 만나면 한 번 만큼만 사랑하게 되는 건가. 많이 본 횟수로 사랑에 빠진다면 난 지금 집 근처 분식집 아주머니와 사랑을 하고 있어야 하나. 감정은 기간과 횟수에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인생의 진리를 조규찬이 모를 리 없었을 텐데. 결국, 그 숭고한 절박함은 사랑의 감정마저 통계로 증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창조해낸 건가. 도대체 만나는 횟수가 사랑의 깊이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더클래식의 ‘내 슬픔만큼 그대가 행복하길’ 역시 한 손가락에 꼽을 만큼 아끼는 이별 노래다. 난 박용준이 좋다. 그의 패배적인 보컬을 사랑한다. 녹음도 누워서 했을 것 같다. 이 노래 역시 짝사랑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 노래에도 문제적 구절은 존재한다. ‘처음부터 왜 잘해주었나요 다른 사람에게도 언제나 그런가요’ 당황스럽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다. 도덕이 흔들렸던 순간이기도 하다. 박용준 씨에게 묻는다. 그럼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잘해주지 않고 어떻게 대하나. 얼굴 붉히고, 만난 지 3초 만에 말 놓고, 앉으라고 한 다음 뒤에서 의자 빼고 그러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잘해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 예의다. 그녀는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또 부모님의 가르침처럼 처음 만난 당신을 예의를 갖추어 대했을 뿐이다. 그녀는 당신에게도 그랬고 다른 사람에게도 언제나 그랬다. 앞으로도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그렇게 대할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하지만 그것은 리스트이기도 하다. 큰맘 먹고 공개한다. 여기 내 삶의 8할을 차지했던 이별 노래들이 있다. 지겹지만 지겹지 않은, 떠날 수 없는 노래들이다. 나는 이 노래들 안에서 자주 쉬었다. 그러니 당신도 가끔은 이 노래들 안에서 휴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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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 - 밤이 머무는 곳에 (1987)
우리노래전시회 - 제발 (1984)
신승훈 - 오랜 이별 뒤에 (1994)
신승훈 - 나비효과 (2008)
이승환 - 텅빈마음 (1989)
이승환 - 눈물로 시를 써도 (1989)
이승환 - 애원 (1997)
이승환 -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2006)
이오공감 - 한사람을 위한 마음 (1992)
이장우 - 훈련소로 가는 길 (1995)
동물원 - 그리움 (1988)
동물원 -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 (2001)
김창기 -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2000)
김현식 - 눈내리던 겨울밤 (1986)
공일오비 - 텅빈 거리에서 (1990)
공일오비 - 떠나간 후에 (1991)
공일오비 - H에게 (1991)
공일오비 - 5월12일 (1992)
공일오비 - 어디선가 나의 노랠 듣고 있을 너에게 (1993)
공일오비 - 그녀의 딸은 세 살이에요 (1994)
공일오비 - 모르는 게 많았어요 (2006)
공일오비 - 받은 만큼만 해주기 (2007)
공일오비 - 1월부터 6월까지 (2011)
윤종신 - 처음 만날 때처럼 (1991)
윤종신 - 오래전 그날 (1993)
윤종신 - 추억만으로 사는 나 (1993)
윤종신 - 널 지워버리기엔 (1995)
윤종신 - 너의 어머니 (1996)
윤종신 - 일년 (1996)
윤종신 - 우둔남녀 (1999)
윤종신 - 배웅 (1999)
윤종신 - 돌아오던 날 (1999)
윤종신 - 도피 (1999)
윤종신 - 이별을 앞두고 (1999)
윤종신 - 모처럼 (2000)
윤종신 - 잘했어요 (2000)
윤종신 - 바다이야기 (2001)
윤종신 - 몇 년이 흘러 (2002)
윤종신 - 몬스터 (2005)
윤종신 - 너에게 간다 (2005)
윤종신 - 나의 안부 (2005)
윤종신 - 소모 (2005)
윤종신 - 동네 한바퀴 (2008)
윤종신 - 야경 (2008)
유재하 - 그대 내 품에 (1987)
유영진 - 그대의 향기 (1993)
젝스키스 - Say (1998)
김동률 - 오래된 노래 (2008)
김동률 - 다시 시작해 보자 (2008)
전람회 - 기억의 습작 (1994)
패닉 - 기다리다 (1995)
더클래식 - 마법의성 (1994)
더클래식 - 내 슬픔만큼 그대가 행복하길 (1995)
오태호 - 친구 수첩 속의 너의 사진 (1993)
피노키오 - 사랑과 우정 사이 (1992)
이상우 - 비창 (1994)
변진섭 - 숙녀에게 (1989)
박용준 - 잘한 일일까 (2002)
토이 - 바램 (1997)
토이 - 거짓말 같은 시간 (1999)
토이 - 여전히 아름다운지 (1999)
토이 - 오늘 서울 하늘은 하루종일 맑음 (2007)
재주소년 - 명륜동 (2003)
장윤주 - Love Song (2008)
하림 - 출국 (2001)
조규찬 - 잠이 늘었어 (2005)
조규찬 - 아마 너도 (2005)
제이 - 어제처럼 (2000)
솔리드 - 어둠이 잊혀지기 전에 (1995)
솔리드 - 이제 그만 화풀어요 (1996)
가을방학 -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2010)
김연우 - 우리 처음 만난 날 (2004)
김연우 - 이별택시 (2004)
김연우 - 청소하던 날 (2006)
넥스트 - 인형의 기사 (1992)
넥스트 - Here I Stand For You (1997)
신해철 -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1990)
신해철 -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1991)
신해철 - 일상으로의 초대 (1998)
박정현 - 꿈에 (2002)
박정현 - 미장원에서 (2002)
빛과소금 - 그대 떠난 뒤 (1990)
빛과소금 -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1991)
서태지와아이들 -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1992)
서태지와아이들 - 이 밤이 깊어가지만 (1992)
성시경 - 넌 감동이었어 (2002)
성시경 - 한번 더 이별 (2007)
성시경 - 거리에서 (2006)
옥주현 - 나에게 온다 (2008)
화이트 - 7년 간의 사랑 (1995)
이소은 - 서방님 (2000)
이지형 - I Need Your Love (2008)
플라이투더스카이 - Day By Day (1999)
휘성 - 완벽한 남자 (2008)
듀스 - 사랑하는 이에게 (1995)
태완 - 나란 사람 (UrbanMix) (2006)
태양 - 나만 바라봐 (2008)
디즈 - Suga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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