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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의 MLB밀] 황재균 “현진아 직구 던져줘”

중앙일보

입력

미국 애리조나 스콧데일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캠프에서 황재균 선수를 찾았습니다. 한국에서 벌크업에 성공한 그는 메이저리그의 거인들 속에서도 찾기 어려울 만큼 크고 단단한 몸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수비훈련을 하는 선수들 가운데 등번호 1번을 발견하고 나서야 황재균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죠.

황재균 선수의 표정은 무척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가 어느 정도로 적응을 잘하고 있냐고요? 벌써 클럽하우스에서 춤을 췄답니다.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시죠?

클럽하우스에서 '강남 스타일' 춤추며 신고식 #오래 준비한 영어도 술술, 선수들과도 잘 어울려 #'초청선수'로서 절박한 마음으로 빅리그 도전

황재균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황재균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브루스 보치 감독과의 인터뷰 중 감독이 저에게 “황재균이 어제 클럽하우스에서 ‘강남 스타일’ 춤 춘 걸 아느냐”고 묻더군요. 그곳에서는 항상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데 마침 ‘강남 스타일’이 나왔고 헌터 펜스가 황재균 선수를 부추겼답니다. 쑥스러웠겠지만 ‘루키’로서 할 것은 다 했다네요.

옆에서 이 얘기를 들은 미국 기자들이 제게 “강남 스타일 춤을 췄다고? J 와 인터뷰를 주선해줄 수 있느냐”고 하더군요. 이곳에서 황재균 선수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 간단히 J라고 부릅니다. 제가 클럽하우스에 있을 때 펜스가 먼저 다가와 “J때문에 온 것이냐? 인터뷰가 필요하면 해줄까?”라고 말하더군요. 포지 선수 역시 "J의 배트플립 영상은 정말 재미있었다."며 선뜻 인터뷰에 응해줬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선수들 사이에서 황재균 선수를 금세 발견하지 못한 또다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는 벌써 동료들과 이렇게 잘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당한 체격도 한몫 했겠죠. 동료들 역시 황재균 선수를 보면 “아시아 선수가 답지 않게 체격이 좋다”라고 말 한답니다.

황재균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황재균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지난달 18일 샌프란시스코 캠프를 시작하는 미팅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보치 감독은 황재균 선수를 소개하며 그가 한국에서 뛸 때 배트플립(홈런성 타구를 때린 뒤 방망이를 집어 던지는 세리머니)을 하는 장면을 여러 개 모아 선수들에게 보여줬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상대 투수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기하는 동작인데요. 황재균 선수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고 합니다. 버스터 포지는 “메이저리그에서 홈런 치고 배트플립 해봐. (싸움이라도 나면) 우리가 도와줄게”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오래 전부터 황재균 선수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며 야구도 열심히 했고, 영어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미국 기자들이 물으면 통역원이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술술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황재균 선수는 롯데에서 뛸 때부터 린드블럼, 아두치, 레일리 등 외국인 선수와 야구장 밖에서도 자주 어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미국 적응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부터 외국인 선수와 어울리는 게 좋았어요. 권위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가 저와 잘 맞았거든요. 영어 공부를 하려고 그 친구들과 일부러 더 만나기도 했고요.”

모든 게 즐거워 보이지만 모든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황재균 선수는 매일 아침 6시30분에 야구장으로 출근합니다. 완벽한 컨디션으로 훈련을 하기 위해서죠. 훈련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면 조금 심심하긴 하지만 곧바로 휴식을 취하며 내일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 자체를 사치스럽게 여기는 것 같아요.

황재균 선수는 메이저리그 캠프에 있지만 ‘초청선수’ 신분입니다. 메이저리그 로스터를 보장 받은 게 아니라 시범경기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마이너리그로 가야 합니다. 그런 위험을 다 떠안고 왔으니 여기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어떨까요? 모든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한편으로는 시간이 가는 게 너무나 아쉬울 겁니다.

황재균 선수는 이곳에 오기 전 헌터 펜스, 버스터 포지, 메디슨 범가너 등 샌프란시스코의 스타 플레이어가 보고싶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어떤 투수를 가장 만나고 싶냐는 질문에 황재균은 주저없이 대답했습니다.

“현진이요! 현진이에게서 홈런을 치고 싶어요. 현진이는 ‘남자’이니까 직구를 던지겠죠?”

황재균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황재균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황재균 선수는 “남자라면 무조건 직구죠!"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동갑내기 친구인 류현진 선수라면 치기 좋은 공 하나 줄 거라는 기대가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승부의 순간, 류현진 선수가 치기 좋은 공을 줄 리가 없지만요. 농반진반의 말에서 황재균 선수의 절박한 마음이 살짝 엿보였습니다.

황재균 선수는 시범경기에서 삼진도 당하고, 홈런도 쳤습니다. 지난달 26일 시카고 컵스와 경기에서 날린 첫 안타(밀어서 친 우월홈런)를 보고 포지는 “스트롱맨”이라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어도 황재균 선수는 들뜨지 않을 겁니다.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꿈을 이룬 게 아니에요. 이제 꿈꾸기 시작한 거죠. 현재 메이저리거 라기보다는 이제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죠.”

황재균 선수가 했던 말이 며칠째 잊혀지지 않습니다.

황재균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황재균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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