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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양손잡이 민주화 등장, 의회중심제 가능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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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16년 촛불시위에 이어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는 일련의 과정을 ‘양손잡이 민주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낸 최장집 교수. 그는 촛불시위가 ‘명예혁명’으로 격상될 수도 있다고 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2016년 촛불시위에 이어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는 일련의 과정을 ‘양손잡이 민주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낸 최장집 교수. 그는 촛불시위가 ‘명예혁명’으로 격상될 수도 있다고 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대통령중심제를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다.”

최장집 『양손잡이 민주주의』서 분석 #야당 주도 탄핵에 여당 비박계 동참 #왼손잡이·오른손잡이 민주파의 조화 #민주 대 반민주 정치 지형 해체시켜 #이젠 대통령중심제 고집 이유 없어 #원한다면 차기 정부서 개헌해 볼 만

양손잡이 민주주의

양손잡이 민주주의

진보 정치학계의 원로 최장집(74) 고려대 명예교수가 촛불시위의 역사적 의미와 정당정치의 변화 등을 두루 짚어본 책 『양손잡이 민주주의』(후마니타스·사진)를 21일 펴내며 내놓은 제안이다. “한국도 원하기만 한다면 차기 정부에서 의회중심제로 개헌이 가능할 것”이라고까지 전망했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의회중심제로의 전환은 그동안 정치적 격변기마다 여러 전문가에 의해 거론돼 왔다. 하지만 정당정치의 미숙함이 늘 문제로 지목됐다.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는 것이었다. 이념 대립이 극단적 양상을 띠는 우리 정치 현실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최 교수 역시 줄곧 반대 입장이었다. 그런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이번에 의회중심제로의 전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해 주목되는 것이다.

정치체제 전환을 점치는 근거는 뭘까. 두 가지다. 하나는 민주화 이후 최대 사건으로 평가되는 촛불시위다. 2016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대규모 촛불시위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를 비롯해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계기는 국회에서 진행된 대통령 탄핵 절차다. 특히 국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보수적 정부 여당이 야당 주도의 탄핵 추진에 동참한 점을 주목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의 탄핵 지지 결정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이는 ‘민주 대 반민주’로 고착화돼 온 우리 정치의 이념 지형을 해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같은 상황을 최 교수는 신간의 제목이기도 한 ‘양손잡이 민주화(Ambidextrous democratization)’라고 명명했다. 대표적 민주주의 이론가로 손꼽히는 필립 슈미터(Philippe C. Schmitter)가 2012년 쓴 논문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양손잡이 민주화란 ‘왼손잡이 민주파’와 ‘오른손잡이 민주파’의 조화를 의미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을 ‘왼손잡이 민주파’로 보고, 정부 여당 내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동참한 비박계 의원들을 ‘오른손잡이 민주파’로 파악한 것이다. 국회에서 여권이 대거 탄핵소추를 지지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찬성표가 간신히 3분의 2를 넘어서는 정도였다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종합편성 프로그램 방송사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이 탄핵 과정에 보여준 역할도 상당했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양손잡이 민주화의 등장은 촛불시위가 만들어낸 가장 큰 공적일 수 있다”며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왼손잡이 민주주의관과 오른손잡이 민주주의관이 공존하면서 양자가 변증법적으로 지양(止揚)해 나갈 때 가능할 텐데 양손잡이 민주화란 바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정부서 개헌은 일정 너무 촉박

촛불시위를 통해 보여준 시민의식 수준과 양손잡이 민주화의 등장을 토대로 해 성숙한 정당정치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이제 우리 정치도 의회중심제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됐다는 의미다. 모든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현재 정치체제의 문제점은 이번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보았다. 하지만 탄핵과 개헌을 모두 현 정부 아래에서 하기엔 일정이 너무 촉박하므로 의회중심제로의 개헌은 차기 정부가 추진해 볼 일이라고 밝혔다.

의회중심제를 대안으로 제시한 최 교수는 프랑스식 ‘준(準)대통령제’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준대통령제는 대통령과 총리의 권위가 분할되는 이원적 구조로 ‘이원 집정부제’와 유사하다.

2016년의 촛불시위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돼 대통령이 현직에서 평화적으로 물러나고, 그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큰 갈등이나 대립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명예혁명’으로 격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헌법의 절차에 따라 폭력적 방법이나 피를 흘리지 않고도 대통령이 교체되는 희귀한 사례이면서 대통령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실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글=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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