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병원 영안실 앞에 나타난 북한 … “말레이시아 부검 결과 수용 않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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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정남 암살사건을 둘러싼 북한과 말레이시아 정부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19일에도 시신 인도와 체포된 북한 국적의 이정철 면담을 둘러싸고 양측은 대립각을 세웠다. 자칫 양국 간 외교적 마찰로 비화될 조짐이다.

현지 경찰 “우리 규정 따라야” 반박

이날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경찰부청장은 김정남 암살사건 수사 발표에서 시신 인도와 관련, “사망자의 가족이 신원을 먼저 확인해 줘야 한다”며 “여권에 기재된 ‘김철’의 가족ㆍ친지들의 소재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가족이 신원을 확인해 주지 않으면 시신을 북측에 인도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전날 탄 스리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도 북한의 반발을 의식한 듯 “말레이시아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현지 법과 규정을 따라야 한다. 여기엔 북한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사건 발생 초기엔 양국 분위기가 험악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북한에 관련 절차를 거쳐 시신을 인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양국 관계에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강철 북한대사가 말레이시아 정부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하자 상황은 악화됐다.

강 대사는 이정철이 체포된 직후인 지난 17일 밤 쿠알라룸푸르 병원 앞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말레이시아가 국제법과 영사법을 무시하는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으며 우리 시민에 대한 법적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는 강도 높은 비난 발언을 쏟아냈다. 강 대사는 격앙된 목소리로 A4용지 3쪽 분량의 회견문을 읽었다. “말레이시아가 우리 외교관 여권 소지자인 그(김정남)에 대한 부검을 우리의 허락 없이 강행했다. 부검 결과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정철의 체포로 북한의 연루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에 대한 반발이었다. 강 대사는 한국의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정치스캔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종 채널을 통해 말레이시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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