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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M&A 같은 미래 투자 차질 … 미전실도 당분간 존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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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재용 구속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17일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됐다. 삼성그룹 창사 이래 총수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8일 오후 특검사무실로 이 부회장을 소환해 뇌물죄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이 16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타고 있다. [사진 김경록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17일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됐다. 삼성그룹 창사 이래 총수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8일 오후 특검사무실로 이 부회장을 소환해 뇌물죄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이 16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타고 있다. [사진 김경록 기자]

18일 포승줄에 묶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언론 카메라 앞에 선다. 특검이 17일 구속된 이 부회장을 소환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 부회장의 모습은 삼성이 맞닥뜨린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삼성이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글로벌 회사인 만큼 당장 큰 문제가 발생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총수 구속에 따른 대외신인도 하락,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이나 중장기적 먹거리 발굴과 같은 중요 의사결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가 “지금이 79년 그룹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 표현한 이유다. 이병철 선대 회장,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도 검찰 수사에 이어 실형(집행유예)을 받았지만 구속된 건 이 부회장이 처음이다.

‘총수 부재’ 그룹 초유의 상황
이 부회장 없어 의사결정 지연
사장단 인사, 조직개편 손도 못 대
올 투자계획도 세우지 못한 상태

삼성의 경영은 총수의 리더십과 미래전략실, 각 계열사의 전문경영인 등 3개 축을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총수 부재가 경영 위기로 이어지는 건 이 3개 축이 수직적 구조로 작동해 와서다. 총수가 장기적 비전을 챙기면 미전실이 이를 계열사에 전파하고 전문경영인들이 경영 현장에서 이를 구현했다. 성장 전략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던 총수가 자리를 비우면서 삼성의 경영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미전실은 당분간 존속한다. 이 부회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미전실 해체를 공식화했지만 그건 이 부회장이 건재하다는 전제에서다. 이 부회장이 없는 상태에서 미전실마저 없어지면 그룹 전반의 현안을 챙기거나 계열사 간 업무, 인사, 이견 조정 기능 등이 사라지게 된다. 삼성 관계자는 “현재 미전실 존폐를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현재 경영 구조에 변화를 주기는 쉽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챙기던 시설 투자나 인수합병(M&A) 같은 미래 먹거리 확보 작업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은 성장 동력이 될 만한 분야의 전문기업을 인수해 해당 사업에서 기술을 축적할 시간을 최대한 당기는 경영 방식을 택해 왔다. 지난해 11월 합의를 이끌어낸 미국의 자동차 전장 기업 하만 인수의 경우 이 부회장이 9조200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협상 시작 2개월 만에 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라면 내리기 쉽지 않은 결정이다.

또 이 부회장은 2014년부터 3년간 인공지능 기업 비브랩스 등 15개 기업을 사들이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술 리더십을 확보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 결정을 내린 것이 삼성이 커온 원동력”이라며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는 기술 진화가 빠른 만큼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성장 전략 확보에 차질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SK·CJ 등도 총수가 구속된 뒤 중요 의사결정이 신속히 내려지지 않으면서 투자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경총 "경영 공백, 우리 경제 큰 부담”

삼성그룹의 일상적 경영 활동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은 연말에 했어야 할 사장단 인사와 조직구조 개편 등은 손도 못 댔다. 100일 이상 검찰 수사, 청문회, 특검 수사를 받아와서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고액인 27조원을 투자비용으로 썼으나 올해는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다.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경우 중국이 거액을 투입하고 있어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미 발표가 났어야 할 채용 계획도 그룹 공채와 계열사별 채용을 놓고 결정을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200조원을 포함해 연간 329조원(2015년 상장 15개사 기준) 매출의 삼성그룹이 흔들리면서 우리 경제 전반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제조업 전체 매출액의 11.7%, 영업이익의 30%를 차지하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이라며 “대표 글로벌 기업의 경영 공백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대와 국제신인도 하락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삼성그룹은 이날 “앞으로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짤막한 공식 입장을 내놨다.

글=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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