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총알이 떨어진 백, 참극을 맞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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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3국 하이라이트>
○ . 후야오위 8단(중국) ● . 이창호 9단(한국)

녜웨이핑, 마샤오춘에 이어 '6소룡(小龍)'이 등장했다. 중국바둑 얘기다. 6소룡의 뒤로 구리.쿵제.후야오위 등 신진고수가 나타났고 이들은 '삼총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한국에서도 이세돌.최철한.박영훈 등이 이창호의 보좌역(?)으로 성장했다. 소위 한국의 신 4천왕이다.

신 4천왕 대 삼총사의 싸움은 전적 면에선 일진일퇴였으나 우승컵은 신기하게도 매번 한국 차지였다. 하지만 최근 중국바둑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던 바둑이 일본에서 한국을 거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조짐일까.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일까.

장면1=흑?의 단수가 백△ 두 점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백?가 잡히면 우변 백대마가 몰사하므로 반드시 살려야 한다. 후야오위 8단은 괴롭게 110으로 몬다. 그러나 상대가 111로 따내자 온몸이 감내할 수 없는 피로감에 빠져든다. 천지대패다. 백은 이 패를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

후야오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젓는다. 이창호 9단이든 누구든 한국기사들과 싸워 밀리지 않았는데 왜 고비 판이다 싶으면 이렇게 진창길에 빠지곤 하는 것일까. 112에 패를 썼으나 일단 손해 팻감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게다가 이창호 9단에겐 115라는 기막힌 팻감이 준비되어 있다. 118에 패를 썼을 때 이창호의 119가 또한 정곡을 찌르는 용의주도한 수순.(114, 117, 122는 패 따냄)

장면2=123에 젖히자 백은 우두커니 동작을 멈추고 만다. 백은 총알이라 할 팻감이 다 떨어졌다. 그러니 더 이상 패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125로 잡히는 참상을 눈뜨고 볼 수 없다. 124로 해소하는 후야오위의 얼굴이 한없이 어둡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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