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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교과서 오류보다 위험한 건 국정화 그 자체” 역사 강사 심용환 인터뷰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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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윤·백시원

교육부가 2016년 11월 28일 공개한 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 3종. [사진=중앙포토]

교육부가 2016년 11월 28일 공개한 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 3종. [사진=중앙포토]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이 논란 속에 지난달 31일 공개됐다. 오는 3월 신학기부터 연구학교에 도입될 예정이나 여전히 찬반 논쟁이 뜨겁다. TONG청소년기자단이 만난 역사N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은 이 문제에 대해 “정치가 아닌 교육의 문제”라며 “내용 오류 이전에 교과서를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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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사와 작가로 활동하는 심 소장은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당시 메신저와 SNS에서 돌던 국정화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한 글로 크게 화제가 된 바 있다. 『역사 전쟁』(생각정원), 『단박에 한국사』(위즈덤하우스) 등의 책을 썼으며 헌법의 역사와 의미를 다룬 책 『헌법의 상상력』(사계절)을 최근 발표했다. tvN ‘어쩌다 어른’ 특강, 드라마 ‘도깨비’ 스페셜편 등의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역사 교육을 주제로 심 소장과 대화를 나눴다.

-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이 공개됐어요. 사실 관계 오류가 발견되고 분량 편중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어떤 점이 가장 문제가 되는 걸까요.
“곳곳에서 지적이 나오지만, 사실 내용의 오류보다 국정화 자체가 문제예요. 국가가 교과서를 관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한 거죠. 역사학은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학문이지만, 그만큼 권력에 기생했던 학문입니다. 어용, 관제의 성격을 지니기 쉽죠. 국정교과서도 본질적으로 똑같아요. 쉽게 말하면 권력을 이용해서 세뇌를 시키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 국정화 자체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현재 정권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권의 이념과 상관없이 ‘국정화’라는 방식 자체가 위험하다는 겁니다. 오류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이미 역사학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지적을 했고, 그걸 반영하려 노력하면 되는 거죠.”

- 그래도 국정화 반대의 이유로 내용 오류가 많이 제시되고 있어요.
“하나하나의 오류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핵심은 구조예요. 이전까지 현대사 두 번째 단원으로 배웠던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을 예로 들어보죠. 이 단원에서 '우리는 어떤 시련을 거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는가'를 배웠어요. 그런데 이번 국정 교과서에서 이 내용을 찾아보니 ‘권위주의 정권과 사회경제의 변화’라고 나와 있어요. 4·19혁명이 일어나 사회가 혼란스러웠으나 박정희 정권이 산업 발전을 시켰다고 하는 겁니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엄청난 발전을 시켰다는 거예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산업화 영웅으로 그리는 구조죠.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직원들이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직원들이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하나 더 예를 들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서술 부분도 그래요. 강제 동원이라는 말 대신 ‘발견됐다’고 서술했는데, 이건 강제 동원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표현이에요. 일본의 극우파나 역사 왜곡 세력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아주 심각한 서술입니다. 반대를 하는 입장에서도 내용의 오류보다는 이런 핵심들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교과서로 (이런 해석을) 대놓고 주입하는 거니까.”

- 그런 구조나 관점 때문에 역사학계에서 지탄을 받는 건가요?
“역사는 무엇보다도 ‘사료’에 근거하는 학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고요. 우리는 그런 해석의 관점을 ‘사관’이라고 부르죠. 교과서 국정화를 하려는 사람들의 문제는 사실을 왜곡했다는 겁니다. 역사학의 첫 번째 원칙을 일단 무시한 거예요. 박정희의 경제 발전 이면에 있는 과오를 숨길 순 없는 것인데 그 사람들은 사실을 편파적으로 구성한 거죠.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적합한 정보를 추합하는 것은 괜찮지만, 관점을 떠나서 사실 자체를 의도적으로 악용해서 구성하는 건 반칙이에요. 이분들은 사실 자체를 떠나 유리한 자료만 뽑고 과장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드라마를 만든 거예요.”

"역사 교육은 학생 참여형 의무 토론 수업으로 나아가야"

- 그렇다면 이상적인 역사 교육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국정화를 막는 게 중요하지만, 저는 검인정 체제로 돌아가는 것도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교과서 자유발행제로 가야 하고, 토론 의무 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탐구 과목만큼은 주입식이 아니라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나아가야 해요. 국정 교과서 이전으로 돌아가 봐도,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는 별 볼 일 없었어요. 여태까지는 암기가 전부였잖아요. 뭔가를 정해서 외우기보다 역사 내용으로 토론을 하면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합리성을 기를 수 있을 거예요. 옳고 그름을 따져볼 수 있잖아요. 훨씬 역동적이고 재미있고, 생산적인 수업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 토론수업이 잘 될 수 있을까요? 현재도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된 논란이 적지 않고, 학생들의 참여도 의문인데요. 당장의 현실적인 방안이 또 없을까요.
“일단은 교과서 국정화를 막아야죠. 그러고 나면 토론수업 의무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잖아요. 국정 교과서를 막는 것에서부터 교사와 학생 중심의 교육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좋은 선생님들이 토론 수업으로 생산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 최근 사회를 보면서 ‘과연 민주주의는 발전해왔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역사는 정말 진보하는 걸까요.
“이런 점 때문에 해석이 중요한 거예요. 독재가 반복되면서 역사는 돌고 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이게 바로 순환론적, 숙명론적 역사관이에요. 하지만 다르게 볼 수 있어요.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있었지만, 프랑스가 완전한 공화정 국가가 되는 것은 100년이 더 걸려요. 나폴레옹이 집권하고, 왕정복고·입헌군주정을 하다가 완전한 공화정으로 돌아오죠. 영국도 청교도들이 신앙적 자유를 요구하는 가운데 제도적 노력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했지만 명예혁명 등을 거쳐 100년이 넘어 이루어졌고.”

- 우리 사회에서도 그럴까요?
“4·19혁명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국민들이 ‘우리의 힘으로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힘을 체험한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이후에는 무력시위도 하고 부마항쟁도 하고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도 있었으니까. 4·19로 최초의 민주 혁명 경험의 역동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하고, 6월 항쟁으로 제도의 구축을 경험했다고 봐요. 그리고 2016년 촛불 혁명은 제도적인 합리성과 절차적인 정의가 앞으로의 사회경제적 모델이 되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이런 견해로 보면 역사는 진보하고 있죠. 그냥 지어내는 얘기가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해석이고, 역사학자들은 그런 해석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자칫하면 숙명론으로 빠질 수 있는 역사에서 ‘아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해 가고 있다, 이 언덕을 넘어서면 놀라운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역사가는 궁극적으로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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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윤소윤·백시원(용인외대부고 1) TONG청소년기자단 죽전지부
사진=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도움=박성조 기자 park.sungjo@joongang.co.kr

장소협찬=책방 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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