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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숙청됐다던 북 김원홍 영상 계속 나와 … 역정보에 당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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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주말 한·미 군 당국의 대북 감시망은 북한 방현비행장(평북 구성시)에 쏠렸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북극성 2호’가 발사된 때문이다. 미국 측이 운용하는 키홀 첩보위성(KH-12) 등의 추적을 따돌리려 북한 당국은 핵·미사일 시설을 은폐하거나 기만전술을 펼쳐왔다. 이동식 발사대(TEL)에 실린 미사일을 고속도로 터널에 숨겨놓았다가 갑자기 쏘아올려 국제사회를 놀라게했다. 함북 풍계리 핵 실험장의 병력과 차량을 사라지게 만들어 핵 실험이 임박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핵 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는 그나마 낌새라도 알아차릴 수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게 대북정보 관계자의 귀띔이다. 가장 까다로운 건 북한 권력 핵심 인물 동향을 체크하는 일이라고 한다. 폐쇄적인데다 최고지도자 한 사람에 좌우되는 체제 특성상 김정은의 동정은 초미의 관심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망 사실을 북한 발표 전까지 까맣게 몰랐던 트라우마도 정보 당국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요소다.

북 권력핵심 동향 파악 최고 난제
주로 내부 암약 인사 정보에 의존
설익은 첩보 흘린 뒤 대응도 살펴
김정은, 정보 유출 막는 활동 강화
핵 실험장 접근한 협조자 최근 처형

이달초 불거진 김원홍 국가안전보위상의 해임설도 마찬가지다. 통일부는 관계당국 첩보를 바탕으로 보위성 부상(副相·차관급)과 직속 부하들이 처형되고 김원홍이 해임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보 당국도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이 김원홍의 해임·강등이나 새로운 보위상의 임명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다. 조선중앙TV에서 김정은을 수행한 김원홍의 과거 자료영상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도 찜찜한 대목이다. 부하들이 처형될 정도의 중대 과오라면 김정은 영상에서 삭제되는 게 원칙이란 측면에서다.

정보당국은 지난해 2월 이영길 북한군 총참모장이 처형됐다고 발표했다 곤욕을 치렀다. 브리핑까지했는데 석달 뒤 이영길이 ‘살아서’ 나타난 것이다. 부총참모장으로 강등됐지만 그는 여전히 김정은을 수행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언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당국은 말을 잊었다. 한 당국자는 “첩보 검증 과정에 문제가 생겼거나 북측이 흘린 역정보에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다. 국가정보원은 2013년 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몰락을 초기단계부터 정확히 파악해 대처했다.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연금되고 부하들이 처형된 정황을 국회 정보위에 신속히 보고했다. 그해 12월 북한 관영매체는 장성택 처형을 공개함으로써 국정원의 대북정보가 적중했음을 확인시켜줬다.

대북정보의 세계에서는 엇갈리는 이런저런 설(說)이 1차적으로 걸러져 첩보가 된다. 현장을 뛰는 정보요원들은 이를 보고서로 만들어 서울의 데스크에게 전한다. 검증을 거친 첩보는 재확인 과정을 거쳐 ‘시인(是認)된 정보’가 된다. 사실로 확인돼 믿을만하고 정책의 참고자료로 쓸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의 정보용어다. 때로는 설익은 첩보 수준의 스토리를 언론에 흘린 뒤 북한의 대응을 살피며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수법도 구사한다.

가장 믿을만하고 정확한 정보는 북한 권력 내부에 암약하는 협조자가 전해오는 정보다. 하지만 그 존재는 극비에 부쳐진다. 2008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당시 청와대 고위인사는 “양치질은 혼자 할 수 있을 정도”라는 언급을 했다 황급히 거둬들였다. 한 정보 기관장은 언론간담회에서 김정일이 파리에 체류 중이던 부인 고용희(김정은의 생모)와 나눈 통화내용을 발설했다 대통령의 진노를 샀다. 오랜기간 구축해온 대북정보망이 한순간에 노출될 수 있는 민감한 발언이란 측면에서다.

핵·미사일과 관련한 북한의 방어막을 뚫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북한 태천지역의 200메가와트(MWe)급 원자로 지역의 토양 시료를 채취해오는 데 성공한 정보요원은 비밀리에 훈장을 받았다. 풍계리 핵 실험장에 접근을 시도하던 우리 정보 당국의 협조자가 북한 경비병에 잡혀 처형당한 일도 있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은 집권 후 정보유출을 막는 북한의 ‘반탐(反探)’활동이 강화된데다 외부시선을 의식한 언론플레이까지 등장하면서 대북정보 요원들의 어려움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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