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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갑자기 조명 꺼진 암흑 무대, 흔들림 없던 런던심포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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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그동안 9번 한국에 왔다. 이달 열리는 공연이 꼭 10번째다. 콜린 데이비스, 세르주 첼리비다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등 쟁쟁한 지휘자들과 함께 한 공연 중 애호가들이 기억하는 무대는 무엇일까. 한 무대에 섰던 연주자, 음악 칼럼니스트 등 4인이 꼽은 런던심포니의 베스트 내한공연을 글을 받고 구술을 정리해 소개한다. 10번째 내한공연은 이달 2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취적인 지휘자 다니엘 하딩(42)의 지휘로 열린다.

영국 악단 특유의 신사적인 연주
정확하고 싱싱한 소리 귀에 선해

1964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런던심포니의 첫 내한. [사진 빈체로]

71년 내한한 단원들을 위한 버스. [사진 빈체로]

이상만(음악평론가)

20일 예술의전당서 10번째 내한공연
전문가 4명 ‘그들의 최고 연주는’

1964년 런던심포니가 한국에서 첫 연주한 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는 공연이 한 시간쯤 늦춰졌기 때문이다. 비행기 연착과 같은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더 선명히 기억하는 것은 부드러운 음색이다. 영국 악단 특유의 신사적인 소리로 연주한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이 기억난다.

런던심포니는 단원이 악단의 주인인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 때문인지 단원들은 성심성의껏 음을 다듬어 연주했다. 대거 영입된 우수한 연주자들의 개인기가 특히 훌륭했다. 호른 수석 배리 터크웰의 정확하고 싱싱한 소리는 아직도 떠오를 정도다. 또 2013년 작고한 지휘자 콜린 데이비스가 불과 37세였으니 얼마나 젊고 살아있는 연주였겠는가. 그 후로도 런던심포니 내한 공연을 여러번 봤지만 이 무대가 유독 기억나는 건 비단 지연된 시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리허설 딱 한 번 하고도 완벽 호흡
이렇게 순발력 있는 악단이 있을까

80년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지휘한 내한 공연. [사진 빈체로]

80년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지휘한 내한 공연. [사진 빈체로]

김영욱(바이올리니스트)

1975년 서울에서 재주가 엄청난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 모차르트 협주곡 5번을 연주했다. 그와의 공연은 아마 수십 번째였을 거다. 그 이전에 뉴욕·LA·피츠버그 등에서 그 도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프레빈과 협연했다. 서울에서 런던심포니와 이 곡을 연주할 땐 무엇보다 오케스트라의 순발력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악단들은 적어도 세 번 리허설을 했는데 런던심포니는 한 번에 끝냈다. 그만큼 새로운 곡을 빨리 익히고 수준급으로 연주해내는 악단이었다. 리허설은 한 번이어도 무대 위 호흡엔 아쉬울 것이 없었다.

런던엔 오케스트라가 많다. 런던필, BBC심포니, 필하모니아 모두 좋은 오케스트라지만 런던심포니가 단연 돋보인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마이클 틸슨 토머스,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 화려한 이름들이 상임 지휘자로 거쳐간 역사가 그 증거다. 내년 부임하는 사이먼 래틀로 그 정점을 찍을 듯하다.

수많은 연주회와 녹음·투어로 단련
지휘자 특성 최대한 살리는 저력도

한정호(음악칼럼니스트)

1996년 11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피아니스트와 지휘자·악단의 탐색전이 한창일 즈음, 무대 조명이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꺼졌다. 건반이 제대로 보일까 우려될 만큼 무대는 갑자기 어두워졌다. 하지만 연주자와 오케스트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는 런던심포니, 지휘자 정명훈, 피아니스트는 백혜선이었다.

런던심포니는 수많은 정기 연주회와 녹음, 투어 덕에 갑자기 맞닥뜨린 사건에 적응하는 순발력이 대단하다. 노장이 투어에 함께 할 땐, 보통 조수 지휘자를 붙여 비상 상황에 대비한다. 2013년 하이팅크 내한 때도 데이비드 아프캄(당시 30세)이 곁을 지켰다.

지휘자와 호흡도 짧은 시간에 잘 맞춘다. 한 음악감독을 오래 두는 서유럽 악단과 달리, 런던심포니는 객원 지휘자군을 넓히고 각 지휘자의 특성을 단시간에 최대한 살리는 형태로 단체의 저력을 강화했다.

선 굵은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포근한 구름처럼 표현해내다니!

2013년 내한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왼쪽)와 악장 카르미네 라우리. [사진 빈체로]

2014년 다니엘 하딩과 피아니스트 김선욱. [사진 빈체로]
2017년의 런던심포니 [사진 빈체로]

류태형(음악칼럼니스트)

2013년 3월 1일 현악기로 솜사탕처럼 쌓은 음색을 실연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런던심포니와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의 무대. 그들이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힘찬 아드레날린 대신 포근한 구름을 그려냈다.

런던심포니의 큰 특징은 지휘자의 스타일을 잘 반영한다는 점이다. 빈 필하모닉의 경우 어떤 지휘자가 와도 악단 고유의 소리가 난다. 그러나 런던심포니는 지휘자에 따라 천양지차다. 지휘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 색채·개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런던심포니의 사운드는 앰프에 따라 다채롭게 변하는 영국제 모니터 스피커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최신 기술을 받아들인 음반 녹음, 다양한 미디어 활용으로 21세기 악단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부여받고 있다. 독일·오스트리아에 비해 이렇다할 클래식 전통이 없었던 영국에 런던 심포니가 음악 제국을 이루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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