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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정부는 국민의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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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정치의 도덕적 기초
이언 샤피로 지음
노승영 옮김, 문학동네
360쪽, 1만5000원

“정치란 도덕적이어야 하나”란 자문엔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괜스레 쓴 웃음이 난다. 최근의 국정농단 사태 등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하는 듯한 한국 정치의 현실을 떠올리면 ‘도덕은 커녕 상식이라도 지켜야지’라는 소리가 맴돌기 때문이다.

책은 “정부가 과연 국민의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난제에 도전한다. 서구에서 제시된 주요 정치적 정당성 이론을 살펴본다. 우선 공리주의. 정부의 정당성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 권리에 무관심하다는 한계가 있다. 가령 노예가 잃는 행복보다 노예 소유주가 얻는 행복이 더 크다면, 노예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처럼 근현대 정치사상은 초기 계몽주의와 반계몽주의를 거쳐 성숙한 계몽주의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저자는 설파한다. 그리고 진리 추구와 개인 자유를 구현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아직 민주주의 이상의 체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 시각이 독특하다. 흔히들 얘기하는 시민 참여와 대표성보단 지배권의 제한 가능성에 방점을 둔다. 정권을 언제든지 교체하고 대체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어 선거에서 진 사람들도 총을 꼭 들 필요가 없다.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고, 소수라도 정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패와 부정직을 폭로하는 메커니즘도 작동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체제이나, 불확실하기에 경쟁력이 있으며 “권력 독점을 치료하는 중요한 해독제”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미국 예일대 샤피로 교수의 정치학 강좌를 정리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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