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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산사서 하룻밤 소년범 “나쁜 짓 안 할게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달 20일 오후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 노란 머리 염색이나 문신 등으로 멋을 낸 10대 9명이 어머니 또는 아버지와 함께 도갑사에 들어왔다. 비교적 가벼운 범죄로 수사를 받고 있는 소년범 3명과 보호관찰 중인 6명이다.

광주지검 목포지청 이색 프로그램
공연·템플스테이 부모와 참여한 뒤
소감문 받고 조건부 기소유예
121명 중 재범 7명뿐, 평균의 절반

이들 10대는 템플스테이 지도법사인 선하 스님으로부터 사찰 예절을 배우거나 대나무 숲을 걷는 등 다음날까지 1박2일간 부모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처음엔 따분했다는 고등학생 A군(17)은 “그동안 철없이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던 것 같다”며 “어머니에게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을 교도소가 아닌 공연장과 사찰로 보내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검찰의 이색 프로그램이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 광주지검 목포지청이 지난해 3월 도입한 ‘가족 참여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다.

이 제도는 소액 사기나 절도, 무면허 운전 등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이나 초범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검찰은 이를 위해 전남문화재단·전남도립국악원 등과 협약을 맺었다. 해당 청소년들은 국악 공연 등을 부모와 함께 보고 소감문을 검찰에 낸다. 검찰은 소감문을 검토한 뒤 청소년들이 재범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기소를 유예해준다.

이 제도는 지난해 초 부임한 김국일(49·사법연수원 24기) 광주지검 목포지청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김 지청장은 소년범의 경우 생계로 바쁜 부모의 무관심 속에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고, 가족과 소통이 부족한 점에 주목했다. 범죄에 빠지게 된 가정환경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한번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의 경우 보호자의 관심이 없으면 또다시 더 큰 범행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족의 동참이 필요하다고 봤다. 부모가 함께 공연 관람이나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소년범에 대해서만 기소를 유예해주기로 한 이유다.

실제 소년범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부모의 관심이었다.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 물건을 판매하는 것처럼 글을 쓴 뒤 21만원을 송금받아 가로챈 B군(15), 마트에서 친구들과 술을 훔친 C군(15) 등은 자영업을 하거나 맞벌이를 하는 부모와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

이들을 비롯해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121명이 부모와 함께 공연을 관람하거나 검찰이 템플스테이 형태로 진행한 ‘희망캠프’에 참여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소년범들은 “부모님과 공연을 보고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하는 시간이 반성의 시간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부모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아들과 함께 희망캠프에 온 어머니는 “아이가 나쁜 길로 들어선 데는 부모 탓도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무관심했던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효과는 낮은 재범률을 통해서도 증명됐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소년범 121명 가운데 재범을 한 청소년은 7명에 불과해 재범률이 5.8%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국 소년범 재범률 12.3%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가족 참여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조재철 검사는 “소년범이 부모와 대화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해주는 게 핵심”이라며 “부모와 자녀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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