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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일 많이 굶었구나 … ‘코리안 좀비’ 역전 어퍼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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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어퍼컷 한 방이면 충분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30·코리안좀비MMA)이 1281일 만의 복귀전을 화끈한 KO승으로 장식했다.

정찬성, UFC 복귀전 화끈한 KO승
초반엔 버뮤데즈 타격전에 고전
1라운드 2분49초 회심의 일격 날려
KO패 2번 뿐인 상대 눕히고 포효
해외 전문가 ‘언더독’ 평가 무색

정찬성은 5일 미국 휴스턴 도요타센터에서 열린 종합격투기(MMA) UFC 파이트 나이트 104 페더급(65.77㎏) 경기(5분 5라운드)에서 랭킹 9위 데니스 버뮤데즈(31·미국)를 맞아 1라운드 2분49초만에 펀치 TKO승을 거뒀다. UFC 통산 4승(1패)째를 기록하면서 정찬성의 MMA 전적도 14승(4KO·8서브미션)4패가 됐다.

정찬성과 버뮤데즈의 경기는 이날 밤 메인 이벤트였다. 랭킹이 낮은 선수가 먼저 입장하는 관례에 따라 랭킹이 없는 정찬성이 옥타곤(팔각형 링)에 먼저 들어섰다. 정찬성을 향해 환호가 터져나왔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좀비처럼 끝까지 일어나 상대에게 달려드는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관중들의 함성이었다. 좀비 분장을 한 채 태극기를 흔드는 팬도 있었다. 미국에서 열린 경기지만 미국선수인 버뮤데즈를 향한 응원에 밀리지 않았다.

초반 정찬성이 다소 고전했다. 레슬러 출신 버뮤데즈는 접근전을 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타격전으로 나왔다. 버뮤데즈는 주먹과 킥을 번갈아 날리면서 정찬성을 압박했다. 정찬성은 잔펀치를 허용하며 좀 흔들리기도 했다. 타격 후 달려드는 버뮤데즈의 테이크다운(상대를 넘어뜨리는 것) 시도를 잘 막아냈다. 버뮤데즈는 UFC에서 테이크다운을 잘하는 선수로 꼽히지만 이날 정찬성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정찬성의 경기 감각도 많이 올라왔다.

“코리안 좀비가 돌아왔다”는 화이트 UFC 대표 트윗.

“코리안 좀비가 돌아왔다”는 화이트 UFC 대표 트윗.

승패가 갈린 건 순식간이었다. 정찬성은 버뮤데즈의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피한 뒤 상대 턱에 오른손 어퍼컷을 날렸다. 주먹은 정확히 꽂혔고 버뮤데즈는 그대로 옥타곤 바닥에 쓰러졌다. 주심이 추가공격을 시도하는 정찬성을 막아섰다. 1라운드 2분 49초 만이었다. 데뷔 후 22경기에서 KO패는 2번 밖에 없었던 버뮤데즈도 꼼짝할 수 없이 완벽한 공격이었다. 정찬성은 포효로 승리의 기쁨을 표현했다. 경기장을 찾은 부인(박선영)도 눈물로 기쁨을 표시했다.

정찬성은 2011년 UFC 데뷔 후 3연승을 달렸다. 첫 상대 레너드 가르시아를 맞아 관절기인 ‘트위스터’로 이긴 첫 선수가 됐다. 두 번째 경기에서 그는 7초 만에 KO승을 거뒀다. 세 번째 경기에서도 관절기로 승리했다. 외국 팬들은 화끈한 경기 스타일의 그에게 열광했다. 페더급 3위까지 오른 정찬성은 2013년 8월 한국선수로는 처음 타이틀에 도전했다. 비록 챔피언 조제 알도(31·브라질)에게 졌지만 탈구된 어깨를 맞추고 싸우는 투지로 큰 박수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정찬성을 ‘언더독(전력이 약한 선수)’으로 전망했다. 알도전 이후 3년 6개월간 경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양쪽 어깨가 모두 아팠던 정찬성은 수술을 받으면서 병역을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서울 서초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퇴근 후 1~2시간씩 훈련했다. 그 정도로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정찬성 "가족 위해 이겨 돈 많이 벌겠다”

병역을 마치고 복귀를 앞둔 상황에서 다행인 건 자신감과 투지를 잃지 않은 점이다. 공백기 동안 결혼을 하고 두 딸의 아버지가 된 정찬성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도 “가족을 위해 이기고 싶다. 예전엔 돈이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젠 많이 벌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대전료와 승리수당으로 4만 달러(4600만원)를 손에 쥐게 됐다. 게다가 멋진 경기로 ‘퍼포먼스 오브 더 나이트’에 뽑혀 5만 달러(약 5700만원)의 보너스를 받았다. 한 번의 승리로 1억원이 넘는 돈을 거머쥐었다. 더 좋은 소식은 UFC와 계약상 1경기 만을 남겨둔 정찬성이 이날 승리로 랭킹에 진입하면서 더 나은 조건에 재계약할 수 있게 된 점이다.

눈시울을 붉힌 정찬성은 “주먹을 좀 맞았지만 별 생각 없었다. 연습했던 어퍼컷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고 말했다. 마땅한 연습상대가 없어 전 소속팀(코리안탑팀)과 함께 훈련했던 그는 고마움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는 응원해준 국민들에게 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이라며 조심스레 운을 뗀 뒤 “지금 대한민국이 어렵다. 모두 한 마음으로 화합해서 이번 만큼은 마음이 따뜻하고 강력한 지도자가 탄생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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