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통에 무능한 집단의 소멸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17호 30면

필자의 아들들은 어린 시절 공룡에 열광했다. 호기심으로 재잘재잘 공룡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다. 25m의 키, 60t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대형 초식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무쇠 다리로 다른 공룡을 사냥하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인기 짱’ 육식 공룡이었다.

공룡은 1억6000만년이라는 오랜 기간 지구의 지배자였다. 화석으로 확인된 것만 1000여 종. 익룡은 하늘을, 어룡은 바다를 지배했다. 공룡은 약 6600만년 전, 우주에서 날아온 도시 하나만한 천체와 충돌해 발생한 엄청난 충격으로 당시 지구에 살던 생물종의 4분의 3과 함께 소멸되고 말았다(『암흑물질과 공룡』, 랜들). 물론 공룡의 멸망과 관련해 다른 가설도 많다.

현생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은 320만 년 전에 등장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걷기 시작하면서 획득한 두 개의 손을 사용하는 호모 하빌라스는 유인원과는 다르게 생활근거지 확보, 집단생활과 이동, 친족관계, 성에 따른 노동의 분담, 도구의 발명, 의사소통의 인간적·문화적 요소를 지녔다. 190만년 전 등뼈를 곧추 세우고 다닐 수 있는 호모 에렉투스(직립원인)는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불을 사용하며 간단한 신호체계로 의사소통을 하고 도구를 사용해 집단사냥을 즐겼다.

인류와 가장 가까운 호모 사피엔스(지혜 있는 인간)는 약 4만∼5만년 전부터 지구상에 널리 퍼져 농경과 목축이라는 혁명적인 생산 수단을 발명해 후기 석기문명을 일구었다.

명실상부하게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은 급격한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생물학적으로 연약한 인류는 변화에 대응하며 생존했다.

유전자가 생명 지속의 원천이라는 『이기적 유전자』, 신은 인간의 피조물이라는 『만들어진 신』과 같은 도발적인 저서로 유명한 도킨스는 현존 인류는 공룡처럼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한다. 지구와 충돌할 수 있는 혜성은 인간이 궤도를 바꾸고, 땅을 파고 벙커 속으로 들어가고, 아예 화성으로 이주(중앙일보 1월 23일자 2면)할 수 있는 기술발전 덕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는 생물학적 진화보다 문화적·기술적 진화에 달려있다고 예측했다.

문화적 진화는 상징적 기호를 통한 생활양식·생각·가치·행동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데서 출발한다. 인류가 고등동물인 까닭은 언어와 비언어의 정교한 표현을 사용해 의미를 공유하고 문화공동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소통을 통해 의미의 상호이해를 지향하고, 지식과 경험에 대한 집단지성의 공유를 통해 구성원들이 협력하고 배려하는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모색했기 때문이다. 소통하는 공동체는 내외부의 어떤 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는 역동성을 지닌다.

소통의 가치를 모르는 집단은 공룡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소통을 통한 집단지성의 가치를 무시하는 소통 노력이 없는 집단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소통이 구성원을 아우르는 공동체감과 사회통합의 핵심 수단이 된 시대이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집단은 소멸하고 만다. 탄핵을 통해 우리 사회는 그 비극적인 사례를 목격하고 있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