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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1억 받는 일자리 창출” vs “없는 집 자식만 군대 갈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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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호 05면

대선 정국 달구는 모병제 논란

모병제를 비롯한 병역 이슈가 대선 정국을 달구는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모병제 신호탄을 쏘자 이재명 성남시장이 선택적 모병제를 제안하고 나섰다. 여기에 지지도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군 복무 기간을 12개월로 단축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여야와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찬반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인구 절벽 시대 병력 자원 급감 우려 #남경필·이재명, 모병제 잇따라 공약 #“票퓰리즘” “저출산 대비” 논란 가열 #“모병 30만 명 실현 쉽지 않을 것”

모병제는 2000년 총선 이후 야권이 주도적으로 제기해온 어젠다였다. 남북관계 긴장 완화를 토대로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합한 모델이 주로 거론됐다. 2012년 대선 때는 민주통합당 경선에 나선 김두관 의원이 모병제를 주요 공약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가속화하고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모병제 논의는 수면 아래로 잠복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모병제가 다시 화두가 된 것은 ‘인구 절벽 시대’라는 현실적 제약과 마주하면서다. 저출산 추세가 심화되면서 군에 입대할 수 있는 청년 자원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취지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른 세계적인 군 현대화 추세에 발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곁들여진다. 이에 대해 일부 대선주자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하면서 공방이 가열되는 모양새다. 특히 병역 문제는 청년층뿐 아니라 40~50대 부모들에게도 주요 관심사라는 점에서 대선주자들의 이슈 선점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보수 진영에서 먼저 불붙인 모병제

국방부에 따르면 적정 전투력 유지를 위한 병력 최저선은 52만2000명이다. 저출산 추세에 따른 병력 자원 감소와 북한군 병력 규모(128만 명)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추세다. 군도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라 현재 62만5000명인 병력을 순차적으로 줄여나갈 방침이다.

문제는 인구 절벽 시대에 병력 자원이 급속히 감소하면서 군 당국이 설정한 52만 명 마지노선도 지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입영 대상자 중 가장 큰 집단인 만 20세 남성의 경우 지난해 말 36만 명에서 2020년 33만 명, 2022년 25만6000명, 2025년에는 22만2000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0년도 안 돼 14만 명 가까이 감소하는 셈이다.

이처럼 머지않아 병력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인 만큼 첨단화·과학화하는 현대전의 특성에 맞게 군의 체질도 질적으로 확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군 안팎에서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주자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이번엔 보수 진영 대선주자인 남경필 경기지사가 먼저 깃발을 들었다. 병력 52만 명선을 유지하기가 물리적으로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며, 결국 양적인 접근 대신 질적인 해법을 찾는 길밖에 없다는 게 남 지사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남 지사는 이에 더해 청년실업 문제가심각한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모병제의 효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모병제를 도입하면 18만 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란 주장이다. 지난 2일엔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1단계로 2022년까지 사병 월급을 최저임금의 50% 수준인 94만원으로 인상해 군 복무 기간 동안 2000만원을 저축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소요되는 6조9000억원의 재정은 법인세 비과세 감면 축소 등을 통해 충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 지사는 이어 2023년부터는 ‘연봉 2400만원에 복무 기간 3년’의 전면적인 모병제로 전환해 간부 12만 명, 사병 18만 명 규모로 군을 축소 재편한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남 지사는 “모병제를 채택하면 병력 규모는 줄지만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군이 정예화되고 전투력도 훨씬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이 시장은 국방개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국방개혁의 핵심을 병력 감축과 무기 체계의 첨단화로 규정한 그는 “현대전은 병력 규모가 아니라 무기의 성능이 좌우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서 『이재명, 대한민국을 혁명하라』에도 “가슴 아픈 역사지만 과거 동학농민운동 당시 개틀링 기관총으로 무장한 소수의 일본군이 죽창을 든 3만 명의 동학군을 전멸시키는 데 하루면 충분했다. 현대전은 이보다 더하다”고 적고 있다.

이 시장은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합한 ‘선택적 모병제’를 제시한 뒤 사병 30만 명 중 10만 명을 연봉 3000여만원에 모병제로 충원할 경우 징집된 20만 명의 복무 기간을 10개월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3년간 복무하고 1억원을 받는 청년 일자리가 생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가운데 진보 진영에서 복무 기간 단축 공약이 제시되면서 논쟁은 더욱 확산됐다. 문 전 대표가 군 현대화를 통해 사병의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줄이고 더 나아가 최대 12개월까지 단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다. 군 복무 이슈가 현안으로 떠오르자 다른 대선주자들도 잇따라 입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대부분 반대 목소리였다. 당장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모병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고, 결국엔 없는 집 자식만 군대에 가게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사회 양극화만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전 대표의 12개월 단축안에 대해서도 “국방예산이나 부사관 충원율 등에 비춰볼 때 18개월 단축도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인데 1년으로 줄이면 대체 나라는 누가 지키란 말이냐”며 각을 세웠다.

문 전 대표와 경쟁 구도에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도 “선거에서 표를 전제하고 공약하는 것은 나라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라며 복무 단축 공약을 비판하고 나섰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지금은 모병제를 얘기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국내 인구 변화 추세와 급변하는 국제 정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장기적으로 병력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남 지사가 “대안 없는 모병제 반대는 무책임하다”고 재반박하면서 논란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군 병력 문제가 향후 대선 정국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예산 부담, 모병 지원율 등도 쟁점

모병제 논의에 있어 또 다른 쟁점은 비용 문제다. 지난해 사병 42만 명에게 지급된 비용은 9500억원이다. 모병제를 도입하면 연 3조~4조원이 소요될 텐데 이를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는 논란이다. 이와 관련,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사병 30만 명을 기준으로 모병 15만 명, 징집병 15만 명 안을 제시한 뒤 모병 전투사병에 하사 급여 수준인 월 178만원을 지급할 경우 연간 총급여가 3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럴 경우 징집병은 복무 기간이 12개월로 줄고, 이들이 사회로 나가 경제활동을 하면 그에 따른 경제 효과가 연 4조6400억~9조3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결국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란 설명이다.

반면 군은 최소 전력 유지와 예산 등을 이유로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예산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주장도 곁들여진다. 군 관계자는 “교육훈련비와 복무 시설 확충 등 부대비용 증가분까지 감안하면 해마다 예산 증액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병이 실제 제대로 이뤄질지도 관건이다. 국회 국방위 야당 간사인 김중로 국민의당 의원은 “경제 상황이 안 좋을 땐 모병이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지만 경제가 좋아지면 누가 군대에 갈지 모르겠다”며 “남북 대치 상황을 감안할 때 아직은 시기적으로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도 “30만 명을 모병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미국뿐”이라며 “모병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군 당국은 노무현 정부 시절 복무 기간 단축을 추진하면서 유급 지원병 제도를 도입했지만 정원은 늘 미달 상태에 운용 인원도 갈수록 줄고 있다. 현재 사단별로 유급 지원병 모집을 할당하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지원자가 모집 정원의 50.9%에 그쳤다.

여론은 유동적이다. 아직은 징병제 유지가 우세하지만 모병제 지지도 예전보다 크게 늘었다. 지난해 9월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징병제 유지가 48%, 모병제 도입이 35%였다. 같은 시기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징병제 62%, 모병제 27%였지만 2011년보다 모병제 도입 의견이 12%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용환 기자 cheong.yongw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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