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나치시대의 일상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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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시대의 일상사/포이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개맘고원, 1만8천원

거대한 역사가 구체성을 갖는 것은 바로 개인의 경험 속에서다. 아무리 거창한 역사 이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삶과 경험 속에 농축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역사학계가 거대 담론 대신 작은 얘기에 귀기울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나치시대의 일상사'는 1933~44년 사이 독일인의 체제에 대한 경험이 중심 축을 이룬다. 주인공은 '작은 사람들(kleine Leute)'이다. 체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노동자.수공업자.소상인.청소년 등 평범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의 체제 경험'을 적고 있다.

이 책이 주목하는 건 나치즘의 이중성이다. 나치에 대한 기대와 저항, 문명화 과정과 병리적 현상, 진보.발전이라는 해방적 측면과 야만.파괴라는 억압적 측면의 공존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런 이중성의 원인을 근대성이 갖는 이중성에서 찾는다.

'근대성=규율화이자 억압'이라는 미셸 푸코의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근대성 자체가 해방과 억압을 공유하고 있고, 그 부정적 야만성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난 게 나치라는 지적이다.

책의 부제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순응과 저항도 이런 이중성에 대한 일상적 경험이 낳은 현상이다. 종교적 도그마로부터 해방을 꾀했던 근대적 삶 속에 이같은 악의 뿌리가 숨겨져 있고, 또 그것이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나치즘의 일상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저자는 과거 청산에 대한 나름의 대안도 제시한다. 그가 키워드로 삼고 있는 '상심(Betroffenheit;傷心)'을 통해서다. 희생자를 애도하고 가해자를 이해하는 것, 과거를 아파하면서 동시에 잊지 않는 것, 최종적으로 모든 당사자가 화해해야 한다는 것 등이 바로 상심의 논리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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