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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리포트]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과 대응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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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지난 2주간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대외경제정책은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힘을 절감하게 해줬다. 환태평양경제동반협정(TPP) 탈퇴,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데 이어 급기야 중동 및 아프리카 7개국 국민의 미국 비자 발급과 입국을 최소 90일간 금지했다.

이게 끝이 아닐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기간 중 내세웠던 관세부과, 무역 불균형 해소, 환율 조정 등 ‘미국 우선주의’와 관련된 굵직굵직한 이슈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치들이 옳은지 혹은 그른지에 대한 담론을 잠시 접어둔다면, 남는 문제는 새로운 국제경제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해야 할 지다.

우선 트럼프의 통상정책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살펴보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지속하면서 세계화에 대한 반감이 확산됐고, 이에 따라 주요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됐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도 이러한 추세 변화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미 오바마 정부는 불리한 가용정보(ATA: Adverse Facts Available)를 이용해 조사관 재량 하에 피소업체에 불리한 관세율 산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무역특혜연장법(Trade Preference Extension Act, 2015)을 개정했다.

‘불리한 가용정보’ 조항은 피소자가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 상무부가 피소자에게 불리한 정보(AFA)를 이용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환율개입 국가에 대한 통상 및 투자 제재를 강화한 무역촉진법(Trade Facilitation & Enforcement Act, 2015)도 발효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이 세간의 이목을 끄는 건 이것이 대선 공약을 실행하는데 있어 핵심요소이며, 따라서 최근의 급진적인 행보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과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 내정자가 지난 대선 직전 공동 집필한 ‘트럼프 경제계획안(Scoring the Trump Economic Pla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이행하려면 향후 10년간 2조4000억 달러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이 중 75%인 1조7000억 달러는 무역수지 적자 해소를 통한 세수 증가 및 투자 증대로 확보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울러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통상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데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은 전체 유권자의 70%를 차지하는 백인 중에서 제조업 사양화로 불황을 맞은 지역, 즉 러스트 벨트(rust belt)지역의 저학력층이다.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숙련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한 가운데 실질소득도 정체 혹은 둔화했다. 이 문제를 단기간에 완화하는 방안으로써 보호무역주의는 여간 달콤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중국의 부상에도 미국이 글로벌 경제 및 안보 경쟁에서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경한 통상정책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적어도 당분간은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보호무역주의 조치가 지속할 것이다. 특히, 집권 초반에는 대통령의 재량권을 적극 활용한 무역정책 공세가 예상된다. 보호무역주의는 궁극적으로는 소비자 부담 증가, 기업 경쟁력 하락 등으로 이어져 미국의 잠재성장률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미국 경제가 감세, 인프라 투자 등으로 최근의 경제 회복세를 이어가는 한 통상전략의 수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반덤핑·상계관세 등 무역구제조치 강화, 위생검역(SPS) 및 기술적 무역장벽(TBT) 관련조치 강화,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환율조작국 지정 등은 아직 미국에 남아있는 카드들이다.

다만 현재 불공정 무역관행, 환율조작, 불법 이민 등과 관련한 미국 통상정책의 우선적인 목표는 중국·멕시코·일본이다. 한국을 직접 겨냥하려 해도 미국이 직접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미국은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등을 들어 한국을 무역촉진법상 환율조작 관찰대상국 중의 하나로 지정했지만, 최근의 달러화 강세 추세와 원화가치의 흐름을 감안할 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또한, 한미 FTA 재협상 논의 가능성도 존재하나 의회의 비준 문제 등을 감안할 때 단기적으로 구체화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한미 양자 간 통상현안에 따른 직접적인 채널보다는 글로벌 경제 전반에 확산하는 통상여건의 악화 및 경기 위축에 따른 간접적 여파가 더 클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중국 경제의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통상마찰 가능성이 가장 높을 뿐 아니라 환율 변동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구조이면서 우리 경제와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보호주의정책과 중국의 대응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행여 중국 및 주변 신흥국의 경기가 급락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여파는 적지 않을 것이다.

둘째, 미국이 아직 직접 제기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필요 이상의 공론화를 통해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의 전략적 접근이 중요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인정하고 양국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협상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사전적으로 대미 무역수지 축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 시뮬레이션 및 대안을 점검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 수출지원체계를 재점검해 통상마찰 소지도 줄여야 한다. 외환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호무역주의 한파를 견뎌낼 수 있는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이다. 우리나라의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이 수년간 정체된 상황에서 내부적으로는 부실기업이 누적되는 가운데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역동성이 저하되고 있다는 신호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구조조정과 함께 규제완화, 경쟁촉진 등을 통한 서비스산업 육성이 시급하다. 부실기업 정리는 책임주의에 입각한 손실 분담과 비용최소화의 원칙에 맞게 추진하되, 개별 기업의 부실보다는 주력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고도화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예상되는 실업문제는 실업급여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가운데 직업훈련의 내실화를 통해 인적자원의 원활한 이동성을 제고해야 한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충하는데 있어 서비스업은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서비스업 생산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향후 소득격차의 확대, 고용 창출력 부진, 재정건전성 악화 등 다양한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상 우리는 일련의 대외 여건변화에 일일이 대응할 정책 수단도 없거니와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정중동(靜中動) 즉, 조용한 가운데 차근차근 준비해 앞으로 다가올 파고에 대비하는 지혜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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