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헌재의 8인 심리…대통령 최선의 판단 협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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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늘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면서 8명의 재판관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재판을 진행하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다. 6명 이상의 재판관이 찬성해야 탄핵이 인용되는 현 제도상 소장의 공백이 헌재 결정의 정당성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더욱 큰 문제는 향후 탄핵 재판을 이끌 이정미 재판관마저 3월 13일에는 퇴임한다는 점이다. “‘3·13’ 이전에 탄핵 심판 결정선고를 내려야 한다”는 박 소장의 공개 언급은 7명의 재판관이 결정하게 되면 심판 결과가 왜곡될 소지가 크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패배하는 쪽이 불복의 깃발을 들 빌미가 될 수 있다. 헌재 결정이 태극기·촛불 세력 간 갈등의 종지부가 아니라 이념·계층·세대·지역 갈등의 또 다른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국가 지도자의 부재, 국정 공백 상황의 장기화는 국민을 위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기에 조속히 결론을 내리는 게 마땅하다.

헌재, 3·13 이전에 결정해야 혼란 최소화
7인 재판관 결정 시 심판 정당성 왜곡 우려
대통령 측, 주장보다 민주적 절차 협조해야

그러나 헌재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또다시 장외 여론전과 지연 전술에 의존하는 양상을 보여 심히 우려스럽다. 지난 25일 헌재 심판정에서 박 소장이 ‘3·13 시한’을 언급한 직후 박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인터넷 팟캐스트와 기습 인터뷰를 자청한 것은 헌재에 대한 불만 표시와 동시에 탄핵반대 지지세력을 겨냥한 계산된 행동으로 보인다.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누군가의 기획에 의한 것 같다”며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또 박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중대 결심’을 거론하고, 변호인단 총사퇴 가능성을 시사하며 헌재를 압박했다. 그 경우 탄핵 재판 자체가 정상 궤도를 벗어나 엉뚱하게 책임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다.

게다가 최씨는 여전히 버티기와 모르쇠로 일관하며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검의 소환 요구에 여섯 번이나 불응하다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영장까지 집행됐던 최씨는 “부장검사가 삼족을 멸하겠다고 협박했다”며 묵비권 행사로 일관하더니 30일 출석 요구에도 불응했다.

재판이나 수사를 받는 박 대통령과 최씨가 무죄를 주장하고 변론하는 것은 민주국가 시민의 권리다. 그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에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청구 또는 의결한 헌재 재판, 특검 수사의 절차에 성실히 임하고 최종 결정에 따라야 할 책무도 있다. 특히 개인적 인연은 물론이고 최씨와의 경제적·정치적 협조관계의 고리가 드러나고 있는 박 대통령이 링 밖에서 “나는 엮였다”고 외치기만 해선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이 사법부와 정부 기관의 공정성을 믿지 못한다면 그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지금부터라도 8인 재판관이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게 대통령의 길, 애국의 길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헌재도 최선을 다해 공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담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