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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SUNDAY 사설

트럼프가 예고한 무역 전쟁 철저히 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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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일(현지시간) 취임식 때 울려 퍼진 올드 팝송 ‘마이 웨이(My Way)’처럼 ‘내 길을 가련다’는 그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다. 취임 선서가 아직 귓가에 맴돌 22일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한 재협상을 선언했다. 그 이튿날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이 가입한 거대 경제블록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탈퇴에 서명했다. 중국산 트럭과 버스용 타이어에 반덤핑·상계 관세를 매긴 것도 그날이었다.

우려했던 미국 보호무역주의가 취임 벽두부터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취임식 때 천명한 6대 국정 기조의 하나인 ‘미국인을 위한 무역협정’에 따른 것이다. 선거공약이라곤 하지만 교역 상대국과 버젓이 한 약속인 다자(多者)간 무역협정들을 취임하자마자 전 세계에 보란 듯 걷어차버린 그 오기와 속도가 놀랍다. 곧이어 미국 내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고 멕시코 접경에 장벽을 쌓겠다는 특단의 방침이 공개됐다. 가히 ‘충격과 공포’의 전략이다. 트럼프는 위압적 분위기 속에서 속전속결로 외국과의 협상 이득을 얻어낼 심산이다. 결국 또 하나의 강대국인 G2 중국과의 마찰과 패권 다툼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교역과 외교안보 양쪽에서 두 나라와 밀접한 관계인 한국에 근심을 던지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국제 교역의 새로운 양상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첫째, 트럼프의 완력이 횡행하는 양자(兩者) 간 무역협정 체제로의 재편이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나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다자간 무역협정 시스템은 개별국의 이해보다 협정 참여국들의 포괄적·종합적 시각과 호혜평등이 중시된다. 양자 간 협정은 트럼프처럼 성미 급하고 힘을 과시하는 쪽에서 상대를 압박하기 좋은 거래 방식이다. 트럼프의 취임식 메시지는 단순 강렬했다.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향후 교역정책의 금과옥조가 될 것이다. 부동산 재벌이 되기까지 ‘뛰어난 협상가’를 자처해 온 트럼프는 한 나라씩 따로 불러 다그치고 어르면서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방법을 구사할 것이다. 맨투맨으로 붙을 첫 상대는 미국에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 온 중국·일본·한국 동아시아 3국이 될 공산이 크다.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압박과 한국·일본에 대한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또는 제정 요구가 예상된다.

둘째는 무역·환율 전쟁의 우려다. 트럼프의 신(新)고립주의와 미국 제일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주도한 자유무역과 세계주의(Globalism)를 70여 년 만에 뒤바꾼 것이다. 트럼프노믹스(트럼프 경제정책)는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왔고, 미 중북부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 가난한 백인 근로자들의 여망을 담은 것이지만 무리한 관세·비관세 장벽은 WTO 제소 등 상대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트럼프의 무역장벽은 스스로 확대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녔다. 국내에서 지속되는 경기확장 정책은 금리 인상과 강한 달러를 부추기고, 이로 인해 초래될 무역적자 누적은 무역장벽을 더 높게 쌓도록 조장한다. 약육강식의 보호무역과 환율 전쟁을 통한 근린궁핍화 정책이 어떤 재앙을 초래했는지 1930년대 대공황이 증명한다.

셋째, 미국의 고립주의로 생긴 국제 무대의 공백은 또 다른 G2 중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보스포럼에 처음 참석한 시진핑은 기조연설에서 “자유무역을 종식시키려는 포퓰리스트 세력에 맞서 세계화를 지켜내겠다”고 트럼프와 각을 세웠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미국·일본 주도의 TPP에 맞서 중국 주도로 만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조성되고 있다. 당장 TPP 회원국인 페루가 RCEP 가입을 위해 중국과 협의에 나섰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주요국들도 RCEP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 외교안보로는 한·미 동맹에, 경제적으로는 한·중 무역에 기대 온 우리에게 동아시아의 미·중 균형이 깨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수출로 지탱하는 한국 경제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미국의 한·미 FTA 재협상 요구 준비가 그것이다. 트럼프는 대선운동 과정에서 “한·미 FTA는 미국에 재앙이다. 미국 일자리 10만 개를 앗아갔다”고 비난했다. 52개국(15건)과 FTA를 맺은 FTA 3대 강국으로서 축적된 노하우가 많다고 안심할 때는 아니다. 우선 정부의 통상 기획·조정 기능이나 협상 실무 조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을 귓등으로 넘겨들을 때가 아니다. 전문가그룹들이 머리를 맞대고 팀워크를 발휘해야 한다. 중국의 향배에도 면밀한 관찰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미·중 통상 갈등이 폭발한다면 중국과 미국을 각각 1, 2위 수출국으로 둔 한국 경제엔 재앙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