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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시흥캠 갈등, 불신만 있고 소통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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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진영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윤석만 사회1부 기자

윤석만
사회1부 기자

“교수님! 지금 학생들 미는 거예요? 이거 폭행입니다.”

“너희는 뭐하는데? 우리가 너희 하라면 하는 사람이야?”

지난 23일 오후 서울대 행정대학원 입구. 학생 30여 명이 학사위원회를 마치고 건물을 나서려는 교수들을 막아섰다. 서로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사제지간이 뒤엉킨 ‘막장’ 드라마는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서울대 학생들은 26일로 109일째 대학 본관을 점거해 농성 중이다. 1990년대 이후 최장기 농성이다. 학생들은 2011년에도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며 한 달간 본관을 점거했다. 하지만 이번 농성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농성의 배경은 서울대가 경기도 시흥시에 건립을 추진 중인 시흥캠퍼스다. 서울대는 ‘미래형 캠퍼스’를 목표로 2009년 시흥캠퍼스 건립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학생들은 2013년 언론 보도를 보고야 이 계획을 처음 알았다. 학생들은 “학교 생활과 직결된 문제를 대학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서울대 시흥캠퍼스 추진을 놓고 학교와 학생이 대립하고 있다. 23일 대자보를 보는 학생들. [사진 장진영 기자]

서울대 시흥캠퍼스 추진을 놓고 학교와 학생이 대립하고 있다. 23일 대자보를 보는 학생들. [사진 장진영 기자]

한발 물러선 학교 측은 지난해 8월 총학생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흥시와 ‘실행협약’을 맺었다. 학교 측은 “공청회와 면담 등 소통 노력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전체 학생 투표에선 80%가 이 계획을 반대했다. 투표 직후 총학생회는 본관을 점거했다.

학생들도 학교 측의 대화 요청에 적극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규섭 대외협력부처장은 “교직원과 대학원생·학부생 대표 등으로 이뤄진 6자 간담회를 여러 번 제안했지만 학생들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정운찬·오연천 등 전임 총장들이 나서 중재를 시도했으나 역시 무산됐다.

이후 학교 측의 미숙한 대응도 학생들의 불신을 심화시켰다. 서울대는 지난 11일 농성 학생들에 대해 ‘출교’ 등을 포함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학생들이 농성 중인 본관 일부 시설에 전기까지 끊어 가며 학생들을 ‘궁지’로 몰았다.

학생들은 본관 점거를 푸는 조건으로 ‘실행협약 폐기’와 ‘시흥캠퍼스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학교 입장에선 수용하기 어려운 조치다. 상대가 받을 수 없는 조건을 관철하려 하니 대화가 진전되기 어렵다. 제대로 된 소통이 없는 데다 양측이 상대방을 불신하는 상황이니 입장을 절충하기 힘들어 보인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의견이 달라 갈등이 빚어질 때 이를 조율하는 것은 모든 공동체 유지에 필수적인 핵심 역량이다. 국내 최고의 지성이 모인 서울대에서 이 역량이 발휘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글=윤석만 사회1부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