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독서삼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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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남다른 인연이 있어 올해로 31년째 절에서 산다. 그렇다고 머리 깎고 출가한 신분은 아니고 불교조계종 중앙포교사로 있으면서 주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머무르고있는 곳은 정능아리랑고개부근 산중턱. 주변으로는 검은 넥타이처럼 도로가 지나가고, 산꼭대기에 서면 서울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산사주위에는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새소리의 공명이 담장처럼, 둘러쳐졌다. 말하자면 도심 속의 산사다.
나는 또 직분상 산사와 속세를 오가야 한다. 속세는 산사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래서 일까. 나는 자주 속세에 대한 욕망을 느끼고 괴로워야 한다. 그 속세는 큰 유혹이며 고통이다.
속세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법이 나에게는 독서다.
이젠 중년이 돼버린 동창들, 어쩌다 알게된 벗들로부터 『오늘 한잔 어때?』라는 전화가 걸려오면 나는 대부분 『지금 중요한 책을 읽는 중이니 방해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네』라고 정중한 거드름(?)을 피운다.
그럴 때 남들은 이해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스릴 만점의 기분을 느낀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평생의 직업이다. 독서라는 직업에는 노사분규도 없고 실직의 걱정도 없다.
그러나 독서라는 직업을 잃게되면 그것은 생계수단을 잃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잃게 된다. 그것은 정신이며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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