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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도깨비차·유시진차·본드카…드라마·영화 주인공 차도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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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자동차 업계 PPL(간접광고) 경쟁

차량 무료 지원서 제작 파트너로
유명 작가·PD 작품 수억원대 지원
드라마에 신차 공개해 호기심 유도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신(공유)이 타는 자동차는 마세라티 ‘르반테’다. 르반테의 별칭은 ‘도깨비차’다.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삼지창’ 엠블럼이 자동차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에 선명하다. [캡처 사진]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신(공유)이 타는 자동차는 마세라티 ‘르반테’다. 르반테의 별칭은 ‘도깨비차’다.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삼지창’ 엠블럼이 자동차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에 선명하다. [캡처 사진]

#1. 최근 방영 중인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주인공 김신(공유)은 차가 필요 없다.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여주인공 지은탁(김고은)을 태우기 위해 차를 산다. 이탈리아 명차(名車) 브랜드인 마세라티의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르반테’다. 르반테S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5.2초 만에 주파하는 스포츠카다. 김신과 르반테를 타고 가던 은탁이 “차 안 갖고 다니신다면서요”라고 묻자 “차 있는 거 자랑하려고”라고 대답하는 장면도 나온다.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삼지창’ 엠블럼도 화면 곳곳에 여과 없이 등장한다.

#2. 2012년 인기리에 방영한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선 주인공 김도진(장동건)이 자신의 애마인 메르세데스-벤츠 ‘ML63 AMG’를 ‘베티’라고 불렀다. 중형 SUV인 ML63 AMG는 차 값이 9000만원대다. 베티란 별칭이 벤츠를 연상시킨다는 얘기가 나왔다. 김도진은 드라마 내내 베티를 끔찍이 아낀다. 연인 서이수(김하늘)와 다투는 장면에선 서이수가 “내가 더 좋아요, 베티가 더 좋아요”라고 묻자 김도진은 “차에서 내려 대답하겠다. 베티가 듣는다”며 농담을 하기도 한다. 드라마 방영 내내 ‘베티’ ‘장동건의 애마’ ‘벤츠 M’ 같은 문구가 인터넷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 자주 올랐다.

TV 광고보다 단가 싸고 효과는 커
‘태양의 후예’ 송중기가 탄 투싼 품귀
현대차의 광고 효과 1100억 추산

자동차 업계의 드라마·영화 간접광고(PPL·Product Placement) 전쟁이 불붙고 있다. 과거 자동차 브랜드가 촬영용 차를 무료 제공하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엔 제작 파트너로 적극 참여하는 추세다. 흥행 가능성이 클 경우 자동차 브랜드가 수억원의 제작비까지 지원한다. 한류 스타가 출연을 결정했거나 유명 작가·PD가 연출한 드라마·영화일수록 PPL 경쟁도 치열하다. PPL로 드라마·영화에 자동차의 성능·기능을 강조하는 내용이 나오거나 배우가 직접 대사로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적절하게 극에 녹아든 자동차는 물론 과도하게 노출해 입방아에 오른 자동차조차 ‘신 스틸러(scene stealer·주연 못지않은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방영한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선 유시진(송중기) 대위가 현대차 ‘투싼 ’을 타고 나왔다. 현대차는 광고 효과를 약 1100억원으로 추산했다. [캡처 사진]

지난해 방영한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선 유시진(송중기) 대위가 현대차 ‘투싼 ’을 타고 나왔다. 현대차는 광고 효과를 약 1100억원으로 추산했다. [캡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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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차 중에선 현대차가 지난해 2~4월 방영한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PPL 대박을 터뜨렸다. 시청률 38%를 기록하면서다. 중국에서도 드라마 동영상 조회 수가 20억 회를 돌파했다. 현대차는 투싼·싼타페·제네시스 등을 출연시켰는데 주인공인 유시진(송중기) 대위가 탄 ‘투싼 아라블루’ 모델은 국내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 현대차는 광고 효과를 약 1100억원으로 추산했다. 최근 방영 중인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도 제네시스 ‘G80 스포츠’를 협찬했다. 미국 좀비 드라마 ‘워킹 데드’ 시리즈에선 ‘투싼 ix’를 주인공 차로 등장시켰다. “투싼ix가 튼튼하다”는 대사까지 나왔다.

현대차는 최근엔 신형 ‘그랜저IG’를 출시하면서 직접 단편 영화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웹 드라마 ‘특근’에서 그랜저 신차를 처음 공개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회사가 원하는 대로 그랜저의 주행 성능·안전성·디자인에 집중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동영상을 활발히 공유하는 요즘 콘텐트 소비 취향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기아차는 PPL의 원조 격이다. 2009년 방영한 KBS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K7’을 선보였다. 드라마 마지막회에서 김현준(이병헌)이 최승희(김태희)를 기다리다 피격을 당할 때 타고 있던 차가 K7이다. 2010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서 ‘스포티지R’, 2012년 드라마 ‘패션왕’에서 ‘K9’을 각각 등장시켰다. 드라마에서 출시될 신차를 먼저 공개해 시청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단순 PPL에서 벗어나 출연 배우와 온·오프라인 광고나 신차 출시 행사를 공동 진행하는 마케팅 전략도 펼쳤다.

수입차 브랜드 중에선 마세라티가 최근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도깨비’뿐 아니라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럭키’에서 주인공 차로 ‘기블리’를, 최근 상영 중인 영화 ‘마스터’에서 주인공 차로 콰트로포르테·그란투리스모를 줄줄이 등장시켰다. ‘럭키’와 ‘마스터’가 각각 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으면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린 것으로 마케팅 업계에선 보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한류 드라마에서 재미를 봤다. 지난해 방영한 KBS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에서 주인공인 한류 스타 신준영(김우빈)이 준중형 SUV ‘GLC’를 탔다. 앞서 2013년 방영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선 주인공 도민준(김수현)에게 준중형차 ‘CLA’를 지원했다. 이 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자 벤츠차이나가 벤츠코리아에 감사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재규어는 지난해 방영한 KBS 드라마 ‘공항 가는 길’에서 주인공 서도우(이상윤)의 차로 중형 SUV ‘F-페이스’를 등장시켰다.

영화 ‘007’ 시리즈에 등장한 애스턴 마틴 ‘DB7’, ‘트랜스포머’에 나온 GM ‘카마로’, ‘아이언맨’에 출연한 아우디 ‘R8 스파이더’(사진 위부터) [중앙포토]

영화 ‘007’ 시리즈에 등장한 애스턴 마틴 ‘DB7’, ‘트랜스포머’에 나온 GM ‘카마로’, ‘아이언맨’에 출연한 아우디 ‘R8 스파이더’(사진 위부터) [중앙포토]

해외 스크린에서도 PPL은 활발하다. 영화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개봉할 때마다 ‘본드카’가 화제다. 벤틀리·도요타·BMW가 본드카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근엔 주로 영국의 명차 ‘애스턴 마틴’이 화면에 등장한다. 애스턴 마틴은 아예 영화를 위해 한정판 본드카를 만들기도 한다.

아우디의 고성능차 ‘R8’은 2008년부터 영화 ‘아이언맨’의 차로 등장했다. R8 V10플러스 쿠페 모델의 경우 최고 출력 610마력, 최대 토크 57.1㎏f·m의 성능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3.2초 만에 도달하는 스포츠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캡틴 아메리카’에도 아이언맨이 타고 나왔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선 주인공 에단 헌트(톰 크루즈)가 BMW ‘M3’를 타고 테러 조직과 긴박한 추격전을 펼친다.

PPL 지나치면 역효과 나기도
할리우드 ‘노골적이지 않게’ 원칙
“트랜스포머, GM 광고 같다” 지적

할리우드에서 통하는 PPL 마케팅 원칙은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은근하게(not blatant but subtle)’다. 이 선을 지키지 못하면 역효과도 난다. ‘태양의 후예’에선 제네시스 ‘EQ900’ 운전석에 탄 서대영(진구) 상사가 달리는 자동차에서 운전대를 놓은 채 조수석에 탄 윤명주(김지원) 중위와 입맞춤하는 장면이 나온다. 현대차의 자율주행 기술을 홍보하려는 의도였지만 지나친 PPL이란 평가를 받았다.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범블비’로 나온 제너럴모터스(GM) ‘카마로’도 PPL이 지나쳐 “영화가 GM 광고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골적이란 비판이 일어도 자동차 업계가 PPL에 매달리는 건 브랜드 노출 효과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의 ‘2016 소비자 행태 조사’에 따르면 TV 시청자 4887명을 설문한 결과 23%가 “PPL 제품을 사봤다”고 답했다. 남성 시청자는 자동차·스마트폰·가전제품, 여성은 의류·패션잡화·화장품 PPL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TV 광고보다 단가가 싸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한다. 한 자동차 업체 광고 담당자는 “TV에 한 달 광고하려면 10억~20억원이 드는데 드라마 PPL은 수억원 수준이다. 15~30초 노출에 불과한 TV와 달리 PPL은 노출 시간도 길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 경우 TV 광고보다 PPL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월등하다”고 말했다. 물론 어느 영화나 드라마가 뜰지 미리 알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도박’을 해야 하는 점은 감수해야 한다.

[S BOX] 카봇·또봇 등 변신 자동차 만화 캐릭터도 인기

직장인 이민영(34·여)씨의 아들(6)은 만화 ‘헬로 카봇’(사진)과 ‘변신자동차 또봇’을 즐겨 본다. 이씨는 “아들이 길을 지나가다 만화에 나온 현대·기아차를 알아보고 반가워하거나 자동차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를 때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자동차를 등장시킨 어린이 만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대형마트에선 만화에 등장한 자동차 로봇이 장난감 판매 목록에서 수년째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2009년 방영을 시작한 ‘또봇’엔 기아차가 나온다. 주인공인 또봇X는 박스카 ‘쏘울’, 또봇Y는 준중형 쿠페 ‘포르테 쿱’이다. 경차 ‘모닝’과 ‘레이’, 준중형차 ‘K3’와 SUV ‘스포티지R’도 줄줄이 등장한다.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해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현대차는 2014년부터 방영한 ‘카봇’에 나온다. 내용은 또봇과 비슷하다. 준중형차 ‘아반떼’와 중형차 ‘쏘나타’, 준대형차 ‘그랜저’, SUV ‘싼타페’뿐 아니라 대형 트럭 ‘엑시언트’나 현대차 최초 독자 개발 모델인 소형차 ‘포니’까지 나온다.

현대·기아차로선 예상치 못한 홍보 효과를 거두고 있다. 미래 고객인 어린이가 수입차보다 국산차에 친숙하도록 하는 효과가 크다. 차량의 튼튼함을 강조하거나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이 많아 우호적인 브랜드 이미지도 쌓을 수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사회 공헌 차원에서 형식적인 수준의 수수료만 받고 차량 디자인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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