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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 TV 보는 남자] 감동으로 폭발한 낯선 하모니

중앙일보

입력

'팬텀싱어'

‘서바이벌 음악 예능’은 진화하고 있다. 해마다 시즌을 거듭한 ‘슈퍼스타K’(2009~, Mnet) ‘K팝스타’(2011~, SBS) 등의 TV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으며, ‘나는 가수다’(2011~2015)와 같이 기성 가수들이 절창을 뽐내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 열기가 시들해지자 일반인과 기성 가수의 컬래버레이션을 컨셉트로 내세운 ‘히든싱어’(2012~, JTBC), 래퍼들의 격렬한 배틀이 화제를 모은 ‘쇼 미 더 머니’(2012~, Mnet)와 ‘언프리티 랩스타’(2015~, Mnet)가 인기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또 아이돌의 성장 서사를 드라마틱한 오디션으로 스타일링했던 ‘프로듀스 101’(2016~, Mnet), ‘가면’이란 장치 뒤에 ‘가창력’이란 반전 매력을 끼워 넣은 ‘일밤:복면가왕’(2015~, MBC, 이하 ‘복면가왕’)이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지금은 ‘팬텀싱어’(2016~, JTBC)의 시대다.

[사진=JTBC]

[사진=JTBC]

국내 최초 크로스오버 보컬 오디션을 표방한 ‘팬텀싱어’는, 남성 4중창 그룹을 결성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우선 ‘복면가왕’의 ‘복면’이란 설정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연상시키는) ‘팬텀’이란 캐릭터로 치환한 점이 흥미롭다. 여기에 성악·뮤지컬·K-POP 보컬 등 다양한 장르의 보컬리스트가 하모니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가요와 팝에 국한된 기존 TV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확연히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남자 도전자들이 부른 유명 뮤지컬 넘버와 오페라 아리아는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가슴을 울린다. 화려한 안무도 없고 현란한 무대 장치도 없이 그저 쭉쭉 뻗어 나가는 이들의 힘찬 목소리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특히 본선 3라운드 트리오 대결이 펼쳐진 7회 방송에서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무대가 나타났다. 뮤지컬 배우 고훈정, 카운터 테너 이준환, 테너 이동신으로 구성된 ‘슈퍼문’ 팀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들이 준비한 노래는 팝페라 가수 알레산드로 사피나의 ‘루나(Luna)’. 이준환의 놀라운 반전 저음과 고훈정의 압도적인 연기력에 이동신의 파워풀한 서포팅이 어우러져 근사한 시너지를 만들어 냈다. ‘전혀 다른 장르의 싱어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데 어울릴까’ 하는 의구심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입증한 순간이었다. 이렇듯 오페라·뮤지컬·팝페라 등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팬텀싱어’가 지닌 희소가치는 분명해 보인다. 다소 낯설고 신선한 무대인 동시에, 각각의 음악 장르에 대한 호기심과 존경심이 시청자에게도 전달되니 말이다.

[사진=JTBC]

[사진=JTBC]

‘팬텀싱어’의 또 다른 매력은 프로듀서 군단이다. 화제성 및 시청률 면에서 성공을 거둔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낯선 도전자의 절창과 더불어 예리하고도 다정한 선배들의 조언이 함께해 왔다. 그것은 서바이벌 시스템을 납득할 만한 공감의 매뉴얼로 바꾸는 무기이기도 했다. 오디션 심사의 달인 윤종신과 프로듀싱 능력이 탁월한 윤상을 비롯해, 뮤지컬 음악감독 김문정,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 가수와 뮤지컬 배우를 오가는 바다, 성악가 손혜수가 이루는 조화도 훌륭하다. 지난 1회에서 김문정 음악감독은, 호흡 컨트롤이 미숙해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도전자에게 자신의 지휘에 맞춰 다시 노래를 불러 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즉흥적으로 이뤄진 이 무대는 노련한 지휘자의 손끝에서 펼쳐진 신세계와도 같았다.

어쩌면 ‘팬텀싱어’도 여느 ‘서바이벌 음악 예능’이 그랬듯, 시즌을 거듭하며 신선도를 잃을지 모른다. 다만 이 프로그램이 열어 놓은 ‘새로운 장르의 문’은 생각보다 더 다양한 소리의 방을 품고 있는 듯하다. 아직 미처 문을 열지 못한 무수한 방에서 울려 퍼질 하모니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짜릿해진다.

진명현

노트북으로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 장르 불문하고 동영상을 다운로드해 보는 남자. 영화사 ‘무브먼트’ 대표. 애잔함이라는 정서에 취하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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