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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줄에 홍어 10여 마리 줄줄이…“올핸 대풍이랑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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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도 홍어잡이 배 따라가보니


오래 곰삭아 개미가 쏠쏠할 때 형언할 수 없는 알싸한 향기가 비로소 천지간에 가득하리라(김선태의 시 ‘홍어’ 중). 예나 지금이나 남도에서 홍어는 귀한 손님에게만 드리던 별미다. 설을 코앞에 둔 지금 흑산도가 분주해진 이유기도 하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전화 한통으로 원하는 정도의 쿰쿰하게 삭힌 맛을 주문할 수 있다. 설 대목을 열흘 앞둔 지난 17일, 전남 신안 흑산도 예리항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을 나가 홍어를 마중했다. 올해는 홍어가 대풍이란다.

글·사진=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요놈이 흑산도 토박이 홍어요.”

흑산(黑山)의 산물답게 등과 배 모두 검다. “이 놈들은 많이 안 움직여요. 그래서 색이 어둡고 살이 연하면서도 토실하지요” 홍어잡이 20년 경력의 이상수(52) 선장의 말이다.

지난 17일 오전 9시, 이 선장의 연안연승 20t 한성호가 흑산도 예리항을 출발했다. 풍랑주의보가 풀린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겨울바다는 아직도 사나웠다. ‘파고 2m’라지만 20t짜리 고깃배의 이물이 속절없이 하늘로 치솟았다. 흑산에서 홍도를 거쳐 약 3시간 정도 갔을까. 얕은 뱃고동이 울리고 선원들이 걸낚을 걷을 채비를 했다. 걸낚은 루어처럼 미끼 없는 공갈낚시다. 수천 개의 낚시바늘을 바다 밑바닥에 깔아놓고 낮게 움직이는 홍어의 몸뚱이를 겨냥하는데 주로 배가 바늘에 걸려 나온다. 걸낚 한 개의 길이는 1해리(1.8㎞). 빨간 ‘다라이(고무통)’에 돌돌 말기 때문에 선원들은 걸낚 대신 ‘한바퀴’라고 부른다. 한바퀴를 걷자 홍어 십여 마리가 달려 나왔다.

1991년부터 홍어잡이 배를 탔다는 이 선장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연이어 홍어가 대풍”이라며 “요즘처럼 잘 잡힌 적은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홍어 총허용 어획량은 158t. 흑산도 홍어 배 6척이 26t씩 잡은 셈이다. 위판장에 나오는 홍어가 보통 5~8㎏인 점을 감안하면 한 척당 4000여 마리의 홍어를 잡았다는 얘기다. 불법 조업하던 중국 배들의 출몰이 뜸하고, 수협과 어민들이 함께 어족자원 보호에 앞장선 게 홍어 풍년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보름 삭힌 홍어가 제 맛”

지난 17일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을 나갔다. 바다 밑바닥에서 걸낚에 걸린 홍어 한 마리가 올라왔다. 흑산도·홍도 연안에서 잡히는 토박이 홍어는 이렇게 색이 검다. 흑산(黑山)의 산물이다.

지난 17일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을 나갔다. 바다 밑바닥에서 걸낚에 걸린 홍어 한 마리가 올라왔다. 흑산도·홍도 연안에서 잡히는 토박이 홍어는 이렇게 색이 검다. 흑산(黑山)의 산물이다.

낚싯줄에서 댓잎으로 싼 도시락 모양의 푸른 물체가 툭 떨어졌다. 네모난 것을 집어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말랑말랑하다. “저 알집 속에 홍어 알이 2개도 있고 5개도 들어있고 그래요.” 암컷 홍어의 몸에서 나온 알집은 물속에서 저절로 부화해 홍어가 된다. 요즘 부쩍 홍어 알도 많이 보인단다.

11시에 시작한 조업은 오후 8시까지 쉬지 않고 계속됐다. 대략 70마리 정도를 잡았다. 이 선장은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지요. 전에는 한 바퀴에 겨우 한두 마리 잡고 그랬으니까요”라며 웃었다. 한성호는 기자를 내려주기 위해 잠시 홍도에 들른 후 다시 거친 바다로 나아갔다. 흑산 홍어잡이 배들은 한 번 바다에 나가면 사나흘씩은 머무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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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홍어 도·소매점이 몰려 있는 예리항 음식점 골목. 설 대목을 앞두고 집마다 홍어를 손질하느라 부산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홍어 골목이면 으레 있어야 하는 시큼한 홍어향이 없다. 홍어는 삭혀야 제 맛인데 말이다. 홍어 중매인 김경우(48)씨는 “흑산도 사람들은 홍어를 푹 삭히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그냥 먹어요. 막 잡은 홍어회 한 점은 쇠고기 육회 한 점보다 맛있지라. 그리고 흑산도 앞바다에서 잡은 홍어는 껍질째 먹어야 제 맛이요. 껍질을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난당께요. 맛 좀 보쇼.” 그에게 홍어 몇 점을 대접받았다. 2시간의 배 멀미가 싹 가실 만큼 식욕 당기는 맛이었다. ‘흑산도 사람들은 홍어를 소금에 찍어먹는다’고 하던데 가서 보니 초장뿐이라 김씨에게 물었더니 “그것은 이녁(본인) 맘 대로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막 잡은 홍어라 알싸한 맛이 덜 해 뭔가 심심하다고 느낄 때, 김씨가 갓김치를 내놓았다. 맛깔나는 조미료다.

흑산 사람들은 왜 홍어를 삭히지 않고 날로 먹게 됐을까. 저온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홍어는 “지 마음대로” 삭혀졌다. 요즘엔 영상 2~3도를 유지하며 천천히 삭힌다. 보름 정도 삭힌 홍어는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상태다. 홍어의 곱(암모니아 성분)과 수분이 적당히 빠져 자근자근 단맛이 나고, 고릿한 냄새는 덜해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특히 이때 육질이 더 연해져 연골이나 날개 부위일수록 씹는 맛이 난다. 현지인들이 ‘홍어 선어회’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저온에서 한 달 정도 삭히면 “서울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이다. 홍어 매니어들이 좋아하는 적당히 콤콤한 맛이 난다. 이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고 ‘홍어는 푹 삭혀야 맛’이라 여긴다면 홍어를 주문할 때 특별 오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흑산 사람들이 추천하는 맛은 아니다. “외지 사람들이 푹 삭힌 홍어를 찾게 된 건 수입산 홍어 때문이지요. 수입산은 냉동 상태로 들어와 물에 담궈 해동하고 또 그걸 작업하는 시간에 삭혀져요. 막 잡은 홍어를 바로 저온 처리하는 흑산도 것하고는 선도가 다르지요.” 하룻밤에 수십 마리의 홍어를 손질하다는 흑산도 주민 김경석(42)씨의 말이다.

흑산 홍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위는 ‘애(홍어의 간)’이다. 아무리 귀한 홍어도 내장은 버릴 수밖에 없지만 이 애만큼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생간을 기름소금에 찍어먹는 맛은 흑산도 홍어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진미다. 시큼한 홍어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애를 넣고 끊인 홍어애탕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한 마리를 주문하면 애와 탕거리를 따로 챙겨준다.

홍어 거시기 알랑가 몰라

홍어잡이 배에서 내려 하룻밤을 묵은 홍도 2구 마을에선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쓸데가 없어 ‘잘라서 버린다’고 알려진 홍어 수컷 얘기다. 보통 홍어는 코와 애, 그리고 날개를 쳐준다. 반면 수컷의 생식기 부위는 가장 인기가 없다. 수컷 홍어 자체도 위판장에서 암컷의 절반 가격이다. 상대를 무시할 때 쓰는 ‘홍어X’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그런데 마을주민 김광식(69)씨는 “맛이 없어 버린다는 얘기는 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며 “홍어 수컷의 생식기를 구워 먹으면 별미”라고 소개했다. “홍어 거시기는 두 쪽인데, 양쪽이 떨어지지 않게 떼서 석쇠에 올리고 숯불에 자근자근 구우면 맛이 제법 나거든. 거시기 끝은 별로고 윗부분이 맛있지.” 김씨는 1990년대 초중반 흑산도·홍도에서 단 1척밖에 없었던 홍어배의 선주였다.

지난 17일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을 나갔다. 바다 밑바닥에서 걸낚에 걸린 홍어 한 마리가 올라왔다. 흑산도·홍도 연안에서 잡히는 토박이 홍어는 이렇게 색이 검다. 흑산(黑山)의 산물이다.

지난 17일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을 나갔다. 바다 밑바닥에서 걸낚에 걸린 홍어 한 마리가 올라왔다. 흑산도·홍도 연안에서 잡히는 토박이 홍어는 이렇게 색이 검다. 흑산(黑山)의 산물이다.

올해 첫 위판이 열린 지난 7일부터 3일 동안 홍어 ‘1번치(8.2㎏ 이상)’는 20만원 후반대였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시세다. 3일 동안 2300마리의 홍어가 위판장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지난 추석 때만 해도 60~70만원이 보통이었다. 이럴 경우 소비자 가격은 80~100만원에 육박한다.

‘홍어는 비싼 음식’이라는 선입견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흑산도에서 택배로 보내지는 1번치 홍어 가격은 30만원 후반대에 형성되고 있다. 홍어를 썰어 작업하는 비용과 운송비를 포함한 가격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홍어(5~6㎏)는 20만원대로 예전 시세를 유지하고 있다. ‘큰 홍어는 비싸다’는 생각에 주로 작은 사이즈를 주문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요즘이 저렴한 가격에 큰 홍어를 맛볼 수 있는 기회다. 흑산도에는 홍어를 택배로 보내주는 소매점이 20여 곳 있다.

● 흑산도 홍어 상회(택배 가능, 지역번호 061)

중매인 1번 246-5778 / 중매인 2번 275-9367 / 중매인 10번 275-9003 / 중매인 15번 275-5033 / 중매인 27번 275-9075 / 중매인 29번 275-8582 / 중매인 35번 275-6636 / 중매인 37번 275-5370 / 중매인 38번 275-9035 / 중매인 50번 275-9013 / 중매인 66번 275-9231 / 중매인 70번 275-4568 / 중매인 75번 275-9149 / 중매인 77번 275-8585 / 중매인 79번 262-7888 / 중매인 88번 275-9353 / 중매인 90번 275-9202 / 중매인 93번 275-9350 / 중매인 105번 275-9143 / 중매인 114번 275-9317 / 중매인 128번 271-9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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