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회장 자살 동기 뭔가] '+100억' 비자금 공개 두려웠나

중앙일보

입력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 동기가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검찰의 '현대 비자금 1백50억원+α' 수사가 가장 큰 자살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송두환 특검팀에서 관련 수사를 넘겨받은 대검 중수부가 鄭회장이 감당하지 못할 현대그룹의 엄청난 혐의를 포착했기 때문에 鄭회장이 자살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설이다.

지금까지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달됐다는 비자금 1백50억원과는 규모와 성격 등에서 차원이 다른 또 다른 비자금이 발견돼 정치권으로 유입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 주변에선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현대 비자금이 2000년 4.13 총선 자금으로 여권에 흘러들어갔다는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다.

당시 鄭회장과 대북사업을 추진하던 청와대 핵심 실세를 통해 여권 실세에게 현대그룹의 정치자금이 건네졌다는 것이다. 여권 실세는 다시 이 돈을 총선에 출마한 정치인들에게 나눠줬다는 얘기다.

모 방송은 5일 '검찰이 1백억원대의 추가 비자금이 정치권으로 유입됐음을 김재수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을 통해 확인한 뒤 鄭회장을 집중 추궁해 鄭회장의 시인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대검은 "'鄭회장이 추가 비자금 수사를 받았다','정치권 유입이 확인됐다'는 부분은 오보다.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음모같다"고 일축했다. 다만 추가 비자금이 발견됐으며, 흐름을 쫓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대검 관계자는 "1백50억원 외에 추가 비자금이 발견된 것은 사실이지만 1백억원 가량"이라면서 "(이 돈이)정치인에게 갔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鄭회장을 상대로 비자금 1백50억원 관련 부분만 조사했다"고 주장했지만 鄭회장을 상대로 정치자금 제공 여부를 추궁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태다.

대검 중수부가 지난달 26일과 31일, 지난 2일 등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鄭회장을 소환해 매번 12시간 이상 조사한 점은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해 준다.

현대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鄭회장이 검찰에서 늦게까지 조사받고 다음날 세시간 동안 재판을 받아 녹초가 됐었다"고 말했다. 鄭회장 가족들도 "鄭회장이 대검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심신이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고 자주 우울해 했다"고 했다.

비자금 1백50억원의 실체를 알고 있는 전 무기중개상 김영완(미국 체류)씨의 조기 귀국 움직임도 鄭회장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鄭회장이 金씨가 조만간 귀국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매우 초조해했다"고 한 현대그룹 관계자가 전했다.

金씨는 朴전실장의 측근으로 현대 측이 朴전실장에게 줬다는 양도성예금증서(CD) 1백50억원을 돈 세탁한 인물. 金씨가 대검에 출두해 "현대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朴전실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할 경우 鄭회장이 곤혹스러운 입장이 될 수 있다.
고윤희.조강수 기자pinej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